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23장 강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01-27 00:00:00
조회수 : 4,817

문제지풀이(3)

    icon1.hwp  (0.27MB)

    icon3.hwp  (37.50KB)

    icon1.hwp  (0.29MB)

사도행전 23장 강해 일부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말씀 사도행전 231-사도행전 2311

요절 사도행전 2311절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주의자들과 충돌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투옥되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지만 바울은 이를 복음 전파의 기회로 삼습니다. 바울은 공회 앞에서 복음을 변론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사이에서 바울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자 주님께서 밤에 바울에게 나타나 로마에서 증인이 되리라고 용기와 믿음을 심습니다. 광신적인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자 로마 천부장이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가이샤라로 이송합니다. 바울은 가이샤라에서 헤롯가문의 분봉왕과 로마 총독 앞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이용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하고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련 속에서 바울을 보호하시고 그 시련을 통하여 복음의 진보를 이루십니다.

 

(양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긴 바울)

 

1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천부장은 바울을 공회 앞에 세우고 정식 재판을 받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공회를 주목하며 말합니다. 바울의 변론 직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하는 것과 그것에 대하여 바울이 즉각 강경하게 맞서는 것을 볼 때, 바울의 변론에 앞서 그에 대한 여러 가지 고소가 있었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는 바울에게로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유대인들의 고소 장면을 의도적으로 생략합니다. 바울에 대한 고소는 그가 율법과 하나님을 거역하였다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었을 것입니다(2128).

여하튼 바울은 공의회의 증언대에 섰고 그를 시기하고 모함하는 자들 앞에 조금도 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변론에 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담대히 공회를 주목하였습니다. 주목하였다는 것은 노려보며 담대히 똑바로 바라보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이런 담대하고 강한 태도는 3절에서 대제사장을 책망하는데도 잘 나타납니다. 바울은 공회원을 형제들아라고 부릅니다. 이전에는 부형들이락 부르고 이제는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공의회와 같은 공식석상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일반적인 인사말을 쓰고 있습니다. 공의회에서는 회원들을 존중해 주는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4:8). 바울이 그것을 알면서 형제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모임이 공식적인 회의가 아니라 비공식 모임이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이 모임이 공식적인 모임인데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당당하게 형제들이라고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어설픈 권위나 무력에 의해 굴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은 공회 앞에서 나는 양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선한 양심(good conscience, RSV)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바울은 양심을 따라 섬겼다고 말함으로 바울의 전날 자신에게 덮어 씌워진 고발에 대해(21:28) 무죄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적어도 율법의 기준으로 볼 때 흠이 없었습니다.(3:6) 또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분명한 자의식(自意識)과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율법적으로 흠이 없이 살고자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무지로 인하여 예수님 믿는 자를 핍박한 것입니다. 섬겼노라는 시민으로서 행하다, 어떤 원리나 규책대로 살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또 복음의 원리에 따라 생활했습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책망함)

 

2,3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바울 곁에 있는 자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아나니아는 네데배우스의 아들 아나니아로 48년에서 58년까지 대제사장으로 군림했으며 잔인함과 탐욕으로 유명했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분반 제사장들로부터 십분의 일 세를 몰수하여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로마 고관들에게는 아낌없이 뇌물을 바쳤습니다. 이렇듯 아나니아는 탐욕적이고 술수에 능한 자였습니다. 그는 친로마 정책으로 인하여 유대인 국수주의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66년에 로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아나니아의 집은 국수주의자들에 의해 방화되었습니다. 아나니아는 헤롯 대왕의 궁전으로 피신하여 궁전 뜰에 있는 도수관 속에 숨어있다가 그의 형 히스기아와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인 아나니아는 바울의 당당한 태도에 즉각적으로 흥분했습니다. 곁에 섰는 사람들은 그곳에 있던 시중이라고 봅니다. 누가복음 1924의 예를 볼때 대제사장 시중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시중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재판정에서 뺨을 맞은 일이 있습니다.(요한복음 1822).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뺨이나 입을 때리는 행위는 사람의 인격을 극도로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폭력적(暴力的)이고 잔인한 자였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을 회칠한 담이라고 책망합니다. 바울은 아나니아의 불법적이고도 인격 모독적인 행위에 대해 조금도 굴하지 않고 강력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회칠한 담이여라는 표현은, 일찍이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회칠한 무덤이여(마태복음 2327)라고 맹렬히 질책한 것과 같습니다. 회칠한 담은 위선자에 대한 질책입니다. 회칠한 무덤이 겉은 깨끗한것 같으나 속은 썩어빠진 상태를 뜻합니다. 회칠한 담은 기반이 안정되어 있지 못해 흔들거리자 겉에 흰 회를 칠해서 튼튼한 것처럼 꾸미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너를 치실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단지 아나니아의 위선을 질책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그에게 저주를 선언하기까지에 이릅니다.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는 형식이 율법에 기록된 저주 방식입니다.(신명기 2822). 어떤 사람은 바울의 이 말을 단순히 관용적인 저주의 선언이 아니라 하나의 예언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나니아가 66년에 살해당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 견해도 일리가 있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이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하면서 율법을 어기고 바울을 치느냐고 담대히 책망하였습니다. 바울은 아나니아의 위선을 비유를 사용하여 지적하고 있습니다. 법대로 판단한다고 하는 자가 법을 어기고 있으니 얼마나 우스운 꼴입니까! 재판은 법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하며(레위기 1915),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형벌이 집행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도 정치 않는 상태에서 바울의 인격을 모독하는 처벌을 명하였으니 그것은 명백히 율법을 어긴 행위였습니다.

 

(대제사장을 존중하는 바울)

 

4-5절을 보십시오.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주위 사람들은 바울이 대제사장을 욕하느냐고 대제사장 편을 들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대표자로서 대단한 권위와 존경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 누구도 감히 대제사장의 권위에 맞설 수 없었습니다(신명기 1712). 이런 종교적 풍토 속에서 살고 있던 그들로서는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맞서는 것이, 그 내용에 관계없이 제사장을 욕되게 하는 행동으로 여겼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당당하게 대답한 것이 불손한 행위로 간주되어 매를 맞으셨습니다.(요한복음1822), 바울의 저주 선언은 매우 불리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사용한 형제들아라는 정중한 어투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출애굽기 2228), 그리고 그의 신앙적 인격으로 보아 바울이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변증에 너무나 열중했기 대문에 자기의 입을 치라고 명한 사람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모인 공의회는 정기적인 산헤드린의 모임이 아니라 로마 관리에 의해 긴급히 소집된 회의이므로 대제사장이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는 옷을 입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공식 좌석에도 앉아있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임을 모르고 욕하였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자신도 대제사장을 공경하라는 말씀을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 2228을 인용한 것으로 바울이 저주를 선언한 인물이 대제사장인 것을 정말로 몰랐으며 또한 그가 율법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율법에 충실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말입니다.

 

(자신이 바리새인임을 말하는 바울)

 

6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는 그곳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당시 상당한 종교적 영향력을 가진 집단으로 그 기원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때 유명했던 대제사장 사독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두개인들이 구체적인 집단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하스모니안 시대 때(B.C. 166-63) 부터입니다. 이들은 순수 유대적 전통만을 고수하고 이방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 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전승 문서들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라든가 영적 세계, 천사와 마귀 등도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요소라 하여 배격하였습니다. 이들은 철저히 현세지향적이고 친로마적이고 체제유지적인 귀족 집단이었으므로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그들은 민중들의 생활과는 유리되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 역시 사두개파와 쌍벽을 이루던 종교적 귀족 집단이었습니다. 에스라로부터 시작된 유대주의에 충성하는 한 부류가 마카비 시대 때 바리새인으로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하시딤 하시디안으로 불리어진 경건 집단 바리새파였습니다. 이들은 사두개파와 달리 모세 오경 외에도 각종 구전, 전승을 동일하게 권위 있는 정경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 천사나 마귀와 같은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였습니다. 이들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권만을 인정하는 그들의 신앙에 배치된다고 보아 로마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율법과 선조들의 전통에 충실함으로써 이스라엘을 개혁하고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임을 밝히고 바리새인들이 믿는 부활의 소망으로 심문을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과의 뜻이 담겨 있는 바울의 변론(5)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고 바울에 대한 적대 행위가 더욱 노골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산헤드린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양자 사이에는 신학적인 견해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았습니다. 바울은 이를 이용하여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바울이 노련한 수를 썼습니다. 마태복음 1016에 언급된 소위 뱀 같이 지혜로운 행동이었습니다. 바울은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고, 또한 그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11) 자기가 감당해야 할 막대한 사명을 위해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였습니다. 지금 바울이 취한 행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가 아니라 그가 장차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넓은 안목에서 행한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 일어난 사건이 그의 로마행의 한 동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습니다.

그는 예수의 부활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부활 소망을 가졌습니다(고전 15:16-58).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공회원들에게 부활과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였습니다. 단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에서는 바리새인과 같은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부활 신앙이 예수의 부활에 근거한 반면 바리새인들의 부활 신앙은 예수와 관계없이 전승되어온 신앙에 근거했다는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차이점을 갖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몸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는 부활을 믿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의 다툼)

 

7-9절을 보십시오.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하는 자들이므로 이것을 믿는 바리새인들과 나뉘어서 서로 싸웠습니다. 바울의 발언은 즉시 효과를 나타내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 신학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다툼은 놓다, 또는 두다의 뜻에서 유래한 세움을 의미합니다. 서로 다른 입장을 옳다고 주장하면서 맞세우는 것입니다. 이 두 종파는 기독교에 대해 그토록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들 간에 대립되는 신학적 노선에 있어서는 첨예한 분열상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들은 비본질적인 문제를 두고 기회만 있으면 논쟁을 일삼는 소위 비신앙적 신학자들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사두개인들은 합리적이고 현세지향적이며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내세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았습니다. 특히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복음서에서도 예수와 부딪히는 논제로 등장합니다(마태복음 2223).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부활, 천사, 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주제들은 두 집단이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인 부분이었습니다. 이 두 집단 사이에는 신학적 차이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한 감정적 대립이 있었기 때문에 논쟁은 필요 이상으로 격화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믿었습니다. 사두개인은 바리새인의 견해를 완전히 부정하며 자신의 삶을 영위할 개인의 자유애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천사와 마귀의 계층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두개인은 천사도 없고 마귀도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인간 평등을 주장하면서 다방면에 걸쳐 순수한 민족적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사두개인은 자신들의 이해 득실에 민감하여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크게 떠들었습니다. 떠들다는 말은 비명을 지르다 울부짖다란 뜻에서 유래한 말로 큰 외침이나 고함 소리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의 논쟁이 매우 격렬해졌습니다. 바리새인은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말할 수 있다고 바울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서기관은 율법 전문가를 가리키는데 바리새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말했다면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박할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여기서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말했다고 할 때 그것이 다메섹에서의 체험을 말하는 것인지(226-10), 아니면 그후 성전에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22:17-21)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바울을 옹호하는 쪽으로 돌아선 몇몇 바리새인은 본문에 등장하는 자들 중 일부입니다. 바리새인들 중에 일부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적어도 관대한 입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 중 다수는 그 생활 양식에 있어 다른 유대인들과 별로 상충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영내로 옮긴 천부장)

 

10절을 보십시오.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 죽을까봐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갔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군대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험악해지고 말았습니다. 찢겨질까는 깨뜨려 버리다 산산조각을 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천부장이 특별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바울의 신상에 큰 위험이 있었을 상황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빼앗아라는 표현도 사두개인들이 바울을 붙잡고 폭력을 가하려 했기 때문에 강제로 떼내어 데려가야만 했던 상황을 현장감 있게 묘사합니다.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주님)

 

11절을 보십시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 날 밤에 주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이 처음으로 로마 선교를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생전에 제자들에게 담대하라는 말로 위로했었습니다(1181633 참조). 이제껏 바울은 그의 생을 통해 많은 환상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16:918:922:1727:23, 24) 고린도 교회에서도 환상중에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이 지금처럼("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가깝게 느껴지도록 묘사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곁에 서서 말씀하신 것은 현재 시점의 긴박성을 시사합니다.

그는 일찍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에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하는 비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19:21) 예루살렘에서의 고난도 이미 각오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20:2321:10-13),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자 그의 심정은 적잖이 당혹감에 사로 잡혔을 것입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주님은 그에게 나타나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고 로마 선교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공해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221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는 말씀이 여기서는 로마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로마로 가는 것은 단순한 바울의 바램이 아니라 주님이 부여해 준 사명임이 분명하게 제시됩니다. 지금 그에게 매우 가깝게 감지되는 격려의 말씀은 이후 2년간에 걸친 로마 전도 여행에서 많은 위험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풍랑을 만나서 죽음의 위협 가운데 있을 때도 예수님은 네가 가이사에게 서야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뱀의 위험과 파선의 위험을 당할 때 의연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바울과 같이 로마선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당시에 로마는 세계의 중심지입니다. 로마에 복음이 전해져야 세계에 복음이 전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계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크신 뜻 가운데 바울을 한 걸음씩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마치기 전까지는 죽지 않습니다. 사명인은 사명을 마치기까지 죽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의 진리입니다.

사도행전 23장 강해 일부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말씀 사도행전 231-사도행전 2311

요절 사도행전 2311

사도행전 23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사도행전 23장 강해 이부 죄인의 몸으로 로마를 향하여 가는 바울

말씀 사도행전 2312-사도행전 23

요절 사도행전 23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고자 간계를 꾸미고 있습니다. 바울의 생질이 이 간계를 천부장에게 알려줍니다. 천부장은 47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바울을 보호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이샤라로 호송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하여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가진 자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사십여 명)

 

12-13절을 보십시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날이 새자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가 사십 명이나 되었습니다. 합법적인 재판을 통하여 바울을 없앨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일단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살해할 암살단을 구성하였습니다.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한 이 집단 안에는 앞에서 바울을 죽일 음모를 꾸몄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21:27-29).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는 단식 서약은 사울왕의 서원에서도 나타납니다(삼상 14:24). 만일 이들이 실제로 바울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 맹세를 위하여 굶주려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맹세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네 가지 경우가 랍비에 의해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선동에 의한 맹세, 과장된 맹세, 잘못된 맹세, 억압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맹세가 그것입니다. 이들 중에는 이 사실을 잘 아는 사두개인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므로 만약의 경우 빠져나갈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이들의 맹세는 바울을 꼭 죽이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여줍니다.

이같이 동맹한 자가 무려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바울을 죽이겠다고 동맹하였습니다. 여기서 동맹은 집단의 강한 결집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들의 살벌한 맹세가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바울의 굳은 결심을 돌려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11).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계략)

 

14,15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그들은 공회를 통하여 천부장에게 요청하여 바울을 데리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러면 그 중간에 그들을 바울을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한 무리들에게 일단 문제가 되는 것은 안토니오 성 안에서 로마 군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바울에게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생각해낸 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협조를 얻으면 가능하리라는 계획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산헤드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바울에 대한 적개심이 남달리 강한 사두개인들이었을 것입니다. 본문에 서기관 즉 율법학자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바울을 옹호했던 바리새인들을(9) 배제하였습니다. 암살단은 그들의 계획에 대해 보다 확실한 지지를 보내리라 판단한 사두개인들에게로 갔습니다. 바울을 죽이려는 자들이 세운 계획은 상당한 실현 가능성을 지녔습니다.

천부장도 자초지종을 알고자 하였고(22:30) 전날의 공의회에서는 소란으로 인하여 아무것도 조사할 수 없었습니다. 공회가 천부장에게 재심을 요구한다면 천부장이 이를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계획은 로마 군대가 바울을 공의회에 출석시키기 위해 안토니오성에서 데리고 내려올 때 길가에 매복해 있다가 죽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법이나 절차에 상관없이 오직 바울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바울을 죽이고 난 후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든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맹목적이고 저돌적인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이들이 바울을 산헤드린에서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죽이려 한 것은 기습하기에 용이함도 있었겠지만 산헤드린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암살 계획을 아는 생질을 천부장에게 보냄)

 

16-18절을 보십시오.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하나님은 바울의 생질을 통하여 이를 바울에게 알렸습니다. 바울에 대한 친척관계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이곳이 유일한 경우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최소한 바울에게는 출가한 누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바울과 누이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생질 사이에 관계에 대해 두 가지로 추측합니다. 바울이 바리새인이었으므로(6), 바울의 누이는 바리새인과 결혼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남편이 예루살렘 사람이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할 때 그 누이의 집에서 머물렀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생질은 예루살렘에서 나고 예루살렘에서 자랐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바울의 누이는 다소에서 살았고 다만 그의 아들을 삼촌 바울이 공부했던 가말리엘의 문하에 율법 공부를 시키기 위해 유학 보냈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의 생질이 다행스럽게도 바울을 해치려는 자들의 암살 계획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음모자들이 자만과 자신감에 가득찬 나머지 계획의 비밀을 철저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바리새인이 바울의 생질에게 알려 주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바울의 생질은 정보를 입수하자 곧바로 영문 안으로 찾아가 바울을 면회합니다. 바울에게는 아직 아무런 구체적 혐의가 없고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므로 면회가 자유롭게 허용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생질을 천부장에게 보내어 알렸습니다. 백부장은 백명 가량의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인데, 바울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듯 백부장에게 말하지 않고 직접 최고 책임자인 천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당시 상황의 심각성과 긴박성에 따라 천부장에게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백부장은 바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여 그대로 따라 주었습니다.

백부장은 바울을 죄수라고 부릅니다. 아직 유죄 판결도 받지 않은 상태인 바울을 죄수라고 부르는 것은 피의자라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감옥은 세 종류로 되어 있었습니다. 공중 감옥은 보통 사람들을 가두는 곳으로 대개 어두운 지하실이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있을 때 갇혔던 옥이 이에 해당하는 듯합니다(16:24). 자유 감옥은 상류층 죄수를 가두는 곳으로 어느 정도의 자유가 허용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입니다. 군영 감옥에서는 군사 한 사람이 자신의 한 손과 죄수의 한 손을 함께 묶어 감시하게 합니다. 이전에 베드로가 갇힌 곳도 군영감옥이고 지금 바울이 갇힌 곳이 바로 이 군영 감옥입니다.

 

(암살 계획을 천부장에게 알림)

 

19-21절을 보십시오.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생질은 천부장에게 유대인들이 바울을 자신에게 보내 달라고 요청하여 오는 중간에 죽이고자 하는 음모를 일러바쳤습니다. 천부장은 백부장을 통해 바울의 말을 전해 듣는 순간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라고 직감했는지 바울의 생질의 손을 잡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물었습니다. 여기서 천부장의 친절한 행동은 바울을 죽이기 위해 광분해 있는 유대인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할 때에도 이방인 빌라도의 우호적인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유대인들의 피의 요구는 가히 광적이었습니다(23:13-23).

바울의 생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용상 15절의 것과 일치합니다. 유대인들이 공모했다고 할 때 유대인들이란 직접적으로 음모에 가담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누가가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 행위로 인해 바울이 이방 선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조함으로써 그 정당성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면 유대인들이라는 표현은 은연 중에 이스라엘 전체를 지시하는 셈입니다. 생질은 유대인들의 말을 따르지 말라고 합니다. 따르다는 설복하다 감언으로 속이다입니다. 음모를 꾸미고 있는 무리들이 무슨 이유를 들어 바울의 재심을 요청한다 하더리도 설득당하거나 속임을 당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숨어서 천부장의 허락만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숨어서는 매복과 같은 말로 잠복 복병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생질은 음모자들이 천부장의 승락만을 기다린다고 첨가함으로써 천부장의 권위를 높여주는 동시에 그의 책임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습니다.

 

(470명의 호위를 받으며 벨릭스 총독에게 보내진 바울)

 

22-24절을 보십시오.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천부장은 생질의 말을 듣고 은밀히 바울의 소송을 추진하였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의 생질의 이야기를 순수히 액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전날의 소동으로 미루어 보건대(9, 10), 유대인들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천부장은 친절하게도 둘 사이의 일을 비밀로 하라고 경계시킵니다. 바울의 생질이 음모자들의 계획을 천부장에게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면 생질의 신변에 위험이 닥칠 것입니다. 음모자들이 자기들의 계획이 드러난 것을 알게 되면 다른 방법을 새로이 계획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날 밤에 바울을 호송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또 한번의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그를 로마에서 증거하게 하고자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이 있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습니다. 천부장은 백부장 두 명을 불러서 제 삼시에 가이샤라까지 갈 보병 보병 이백명과 기병 칠십명과 창병 이백명을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도합 사백 칠십명의 호위를 받으며 로마로 가게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뜻 안에서 로마로 가는 가장 좋은 길 얻기를 구하였는데 그것이 죄수로 가는 것입니다. 죄수로 가서 그를 보호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전도하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보면 어리석지만 하나님의 방법으로 보면 지혜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는 신비롭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합니다. 3시는 저녁 9시를 말합니다.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집요함과 폭력성을 익히 잘 알던 터라 조금이라도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당장 그날 밤 음모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바울을 빼돌리려 했습니다. 바울 한 사람을 호송하는 데 호위 병력을 무려 사백 칠십명이나 동원하는 것은 천부장이 이 일을 얼마나 신중하게 생각했던가를 말해줍니다. 물론 천부장의 이러한 조치가 바울에 대한 애정이나 존경 때문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로마 시민이 자기의 관할 구역에서 무고한 희생을 당하도록 방치했을 때 그 자신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바울로서는 예루살렘을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부장 루시아와 총독 벨릭스)

 

25-26절을 보십시오.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천부장 글리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을 보냈습니다. 바울을 가이사랴에 보내려 한 것은(23), 총독이 주재하고 있는 그곳에서 바울을 정식으로 재판 받을 수 있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총독 벨릭스는 본래 노예였으나 글라우디우스 황제의 모친 안토니아에 의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안토니우스 벨릭스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형제 팔라스 역시 같은 노예였으나 그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자유인이 되었고 그의 총애를 받는 총신이 되기까지 하였습니다. 벨릭스는 그의 형제 팔라스의 도움으로 글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A.D. 52년에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A.D. 58년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에 의하면 벨릭스는 잔인하고 음탕하며 노예의 정신으로 왕의 권력을 행사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음탕함은 결혼을 세 여자와 한 것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한 여인은 안토니아 클레오파트라의 손녀였고, 또 한 여인은 헤롯 아그립바 I세의 딸 드루실라였으며, 나머지 한 명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는 90km 정도 되는 거리였으므로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말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말은 전쟁용 말이 아닌 일반 운송용 나귀나 말을 가리킵니다.

 

(바울의 무죄를 말하는 천부장)

 

27-29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였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이고 율법적인 문제 외에 죽일 죄가 없다고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루시아는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질 경우를 우려한 나머지 보고 내용을 아전인수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지닌 것을 안 것은 이미 바울을 체포하고 채찍질을 명한 이후였지만 보고 내용에는 이 사실이 빠져 있습니다.(21:3322:24).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로마 당국이 바울의 로마 시민권을 처음부터 존중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붙든 것은 단순히 사형(私刑)을 가하기 위함이 아니라 공적 차원에서 제재를 가하기 위함이었습니다(21:27-32). 그들이 바울에게 공적으로 제재하기 위해서는 로마 당국의 허가를 필요로 했습니다. 천부장 루시아가 바울을 결박한 것은 군중들의 소요 사태를 일단 진정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21:32, 33). 만일의 사태로 인해 자신에게 불이익이 초래될지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루시아는 사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 문제에 관한 고소는 이미 예전에 갈리오 총독 때에도 있었던 일로 총독 갈리오는 바울을 해치려는 유대인들의 소송이 로마 법정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 유대인들의 종교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들어 재판을 거부하였었습니다(18:15). 여기서도 천부장 루시아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판별하고 있습니다. 즉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것은 율법에 관한 문제일 뿐 형사 처벌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상 루시아가 바울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을 헤치고자 하는 간계를 총독에게 알림)

 

3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간계도 있으니 벨릭스 총독이 재판해 달라고 보냈습니다. 해하려는 간계는 40여명의 단식 맹세자들의 음모를 가리킵니다(12, 13, 20, 21). 천부장이 이 사실을 고발하는 유대인들에게 벨릭스 총독에게 말하라 하였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호송하는 군인들이 안전한 지대로 빠져나간 후에 유대인에게 알렸을 것입니다.

 

(바울을 총독에게 호송함)

 

31-32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군인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가이샤라에 있는 벨릭스 총독에게 호송하고 있습니다.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렀습니다. 안디바드리는 예루살렘과 가이사랴 사이에 있는 도시로 본래의 이름은 카바르 - 사바였습니다. 헤롯이 이곳에 도시를 건설한 후 그의 부친 아티바터의 이름을 따서 이처럼 명명했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북서쪽 유대 구릉의 끝에 있는 현재의 라스엘-아인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안디바드리까지가 56km 이상을 강행군하였습니다. 바울은 안디바드리까지 무사히 도착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추격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더이상 중무장한 군대의 호위를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홀가분하게 빠른 속도로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으므로 마병을 제외한 나머지 군대는 철수하게 했습니다.

 

(바울을 헤롯 궁으로 보냄)

 

33-3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웠습니다. 안디바드리에서 가이사랴까지의 39km를 기병들에 의해 바울은 무사히 호송되어 루시아가 보낸 편지와 함께(26-30) 벨릭스에게 직접 인도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재판정 앞에 출두시켰습니다.(14:10). 총독은 바울이 길리기아 사람인 것을 알고 바울을 헤롯궁에 두고 지키게 하여 재판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벨릭스는 어느 영지 사람이냐고 물은 것은 일종의 예비 심문을 행한 것입니다. 영지는 지배하고 통치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벨릭스는 황제의 직할지인가 아니면 지방 총독의 속주인가를 바울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그의 출신지를 묻는 이유는 바울의 출신지에 따라 재판 관할권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바울의 출신지가 지방 총독의 관할권이라면 그를 그 지역의 총독에게 보내 재판을 받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길리기아 출신이라고 대답하자, 그곳은 로마의 직접 통치 지역이었으므로 벨릭스는 자기가 재판을 담당하기로 결정하고서 바울을 송사하는 자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합니다. 헤롯궁은 본래 헤롯 대왕(B.C. 37~A.D. 4)이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가이사랴에 크게 지은 궁전이었는데 후에는 로마 총독의 관저 및 본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총독의 관저로 사용될 때의 명칭은 브라이도리온입니다(15:16). 대개의 고대 궁전이 그러하듯이 헤롯 궁도 요새의 역할을 하고 재판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지하에는 감옥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을 이 지하의 감옥에 가두어 두었는지 아니면 따로 방을 하나 주어 그곳에 머무르게 하면서 감시하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시민이었고 재판도 받지 않은 상태이고 루시아의 편지 내용이 바울의 무죄를 암시하였으므로(29) 벨릭스는 바울을 죄수 취급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마 바울은 가벼운 구금상태에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3장 강해 이부 죄인의 몸으로 로마를 향하여 가는 바울

말씀 사도행전 2312-사도행전 23

요절 사도행전 23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사도행전 23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34 [사도행전] 사도행전 28장 강해 일이부 로마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의 전파 오요한 2014-10-16
33 [사도행전] 사도행전 27장 강해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 오요한 2009-01-30
32 [사도행전] 사도행전 26장 강해 일이부 바울의 두번째 간증 메시지 오요한 2009-01-30
31 [사도행전] 사도행전 25장 강해 가이사에게 호소하는 바울 오요한 2009-01-28
30 [사도행전] 사도행전 24장 강해 벨릭스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 오요한 2009-01-28
29 [사도행전] 사도행전 23장 강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오요한 2009-01-27
28 [사도행전] 사도행전 22장 강해 일이부 바울의 첫번째 간증 메시지 오요한 2009-01-25
27 [사도행전] 사도행전 21장 강해 복음을 위해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오요한 2009-01-23
26 [사도행전] 사도행전 20장 강해 바울의 고별설교 오요한 2009-01-20
25 [사도행전] 사도행전 19장 강해 에베소 교회의 제자양성 오요한 2008-12-12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