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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24장 강해 벨릭스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01-28 00:00:00
조회수 : 6,682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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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장 강해 일부 벨릭스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행전 241-사도행전 2427

요절 사도행전 24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은 여러 번에 걸쳐서 재판을 받습니다. 본문은 총독 벨리스에게 재판 받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믿음과 소망을 고백합니다. 특히 그 소망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증언합니다. 바울은 벨릭스에게 심판의 복음을 전합니다.

 

(대제사장의 고발)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바울이 가이샤라에 있는 헤롯궁에 갇혔을 때였습니다. 닷세 후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변호사 더불로로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가이샤라로 내려와서 바울을 고발하였습니다. 닷새 후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한 후부터 닷새 후입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여기서도 그의 집요한 악함이 드러납니다. 아나니아는 바울이 전통적인 유대교 신앙을 떠났다는 종교적 이유로 고발했습니다. 그 외에도 바울에게 저주를 당한 것에 대한(23:3) 개인적 증오심 때문에 가이사랴까지 찾아와 바울을 끝까지 해치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로마 법정에서 바울에게 불리한 판결을 확실히 하기 위해한 변사 더둘로까지 동원하였습니다. 변사는 유대교의 법과 로마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두루 갖추고서 뛰어난 언변을 구사할 줄 아는 변호사를 가리킵니다. 아나니아는 로마법의 절차를 잘 아는 변사를 데리고 와서 바울을 고소하고자 하였습니다. 변사의 뛰어난 언변으로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고자 하였습니다. 이 변사의 이름 더둘로는 당시 로마 세계에서 널리 쓰이던 이름입니다. 아마 그는 헬라계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에 대해 특별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특히 사두개인들(23:6-9)도 사적으로 온 것 같습니다.

 

(아첨하는 더둘로)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벨릭스 총독이 바울을 법정으로 부르자 더둘로가 바울을 고소합니다. 아나니아 일행의 고소가 접수되었고, 바울이 법정에 불려나옴으로써 원고와 피고가 한자리에 모였고 재판장 벨릭스가 자리에 앉음으로써 재판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더둘로의 바울에 대한 고발 논고가 시작됩니다.

더둘로는 벨릭스 각하에게 크게 감사합니다. 더둘로의 논고는 의례적으로 재판장을 존중하는 차원을 넘어 낯간지러운 아첨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의 아첨의 요지는 벨릭스의 뛰어난 통치력으로 민족이 개혁되었고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벨릭스의 통치에 대해서 언제 어디서나 환영하며 감사하여 마지않는다는 것입니다. 더둘로의 이 말은 아첨 이상의 어떤 진실성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말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총독 벨릭스의 상습적 잔혹 행위는 그 당시에 널리 알려졌던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벨릭스는 총독으로서의 특권을 이용하여 뇌물과 여색을 탐하는 등 온갖 악행을 도모하였습니다. 특히 자신의 비위를 거스리는 자들은 암살자를 동원하여 살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타키투스에 의하면 당시에 많이 일어났던 소요를 진압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강도떼들을 부추겨 약탈하도록 하여 그 약탈물을 나누어 가졌다고 합니다. 나중에 벨릭스가 총독에서 물러나 로마로 소환되었을때, 이런 일들에 대해 유대인들이 탄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는 찬사를 늘어놓는 더들로의 의도는 당시에 벨릭스가 가지고 있던 반유대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입니다. 벨릭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거짓 찬사를 통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려는 것입니다.

그는 총독을 괴롭게 하지 않고자 대강 말한다고 합니다. 그는 실질적으로 할 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총독 벨릭스를 불편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간단하게 중심 내용만 말한다고 합니다. 당시 관례적으로 법정에서 재판장에 대한 예의로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더둘로의 변사로서의 노련한 언변을 구사합니다. 그는 통독의 통치 업무를 방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대강 짧게 말한다는 말은 필요한 부분만을 베어내는 것, 또는 필요한 부분 외의 것을 베어내 짧게 한다는 뜻입니다

 

(소요죄와 성전 모독죄로 고발)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7. (6하반-8상반 없음)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더둘로는 벨릭스를 칭찬을 한 후에 바울에게 소요 죄와 성전 모독죄로 고소하였습니다. 여기서 성전 모독죄는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문제요. 소요죄만이 로마법정에서 바울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더둘로는 바울을 전염병과 같은 자라고 합니다. 염병은 흑사병과 같이 전염성이 강하고 일단 감염이 되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전염병을 말합니다. 형편없는 사람에 대한 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옘병할 놈이라는 욕이 있습니다. 더둘로는 바울이 전한 도가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그것이 마치 흑사병과 같이 사람들에게 해가 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바울을 염병이라고까지 부른 것은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나갔음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복음의 전파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는 바울을 소요케 하는 자라고 합니다. 사회소란죄를 적용하였습니다. 아나니아 일행이 상당히 치밀한 준비를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소요죄로 벨릭스의 분노를 유발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정치적 혁명 세력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벨릭스는 유대를 통치하는 동안 여러 가지 소요 사건들에 직면하여 그 주동자들은 물론 추종자들까지도 십자가에 처형시키는 방식으로 강경하게 진압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평화를 깨뜨리는 어떤 소요에 대해서도 즉시 잔인하게 진압했습니다.

더둘로는 바울을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합니다. 이단은 정통교리에서 어긋나는 파당을 말합니다. 더둘로가 로마에 저항하는 집단으로서의 도당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예수를 따른 자들을 가리켜 나사렛당이라고 부릅니다. 나사렛당은 본래 예수가 나사렛 출신이었기 때문에 예수 이름 앞에 나사렛을 덧붙여 불렀습니다. 우두머리는 지도자 수장을 말합니다. 더둘로는 바울을 정치범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당하신 모함과 상당히 유사합니다(23:2). 누가는 주께서 당하신 고난을 제자도 당하고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바울이 성전을 더럽게 하였다고 합니다. 성전 즉 종교에 관한 것은 로마 법정에서 죄의 유무를 판결하는 자료가 되지 못함을 저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매우 간략하게 말합니다. 만약 여기가 유대교 법정이었다면 가장 먼저 중요하게 고발해야 할 제목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고 반로마적인 행위에 관한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예수를 죽이기로 결심하게 만든 것이 성전 정화 사건이었습니다.(11:15-19) 바울이 결정적으로 거짓 고발한 성전 모독입니다.(27-30) 그런데 이들은 로마법정에서는 정치범으로 고발합니다. 주님과 제자 바울이 고소 받는 것이 공통됩니다. 변사는 총독이 친히 바울을 심문하시면 고발하는 것을 모두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더둘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궤변적, 허위적 자신감이 나타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가세)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유대인들도 대제사장의 고소를 옳다고 하였습니다. 아나니아 일행이 예루살렘을 떠나올 때 장로들 외에 다른 유대인들도 데리고 왔습니다. 자기들의 위세를 과시하고 많은 증인이 있음을 보여주어 자기들의 의도대로 판결을 끌고 가려고 합니다.

 

(소란죄를 범한 증거가 없다는 바울)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총독은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고 합니다. 총독은 고개를 끄떡이고 고갯짓으로 신호하였습니다. 벨릭스는 재판장으로서의 위엄을 과시하려는 듯 말로 하지 아니하고 고갯짓으로 신호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변호사가 없었지만 변호사 성령을 의지하여 변호합니다.

바울은 벨릭스가 이 민족의 재판장이 된 것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이 백성의 재판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이 민족이라고 표현한 것은 로마 총독 벨릭스와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다름을 시사합니다. 바울은 벨릭스가 재판장됨을 말하는 것은 더둘로가 벨릭스의 통치자 됨을 집중적으로 말한 것과(3) 대조됩니다. 현재의 상황은 재판정이므로 벨릭스를 총독보다는 재판장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바울 역시 벨릭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함으로써 재판장에 대한 정중한 예의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래 내용은 총독이 아실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8절에서 더둘로가 자신에게 했던 말과 동일합니다. 두 사람 모두 벨릭스가 그들의 증언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증언이 서로 다르므로 한 사람은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증거(사실)를 강조합니다. 바울이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뿐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예루살렘 방문 목적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더둘로가 바울을 정치범으로 고발한 것에 대한 반대 논증을 하였습니다.(5). 더들로는 1절에서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사랴에 온 것은 내려온 것으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올라 간이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을 종교적 중심지로 보는 유대적 배경에 따른 관용적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머문 기간 12일이어서 정치적 소요를 일으키기에는 상당히 짧은 기간이었음을 밝힙니다. 더둘로의 고발이 근거 없는 억지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열 이틀 가운데서도 나흘 동안 붙들려 있었다는 점과 칠일 간은 성결례를 행하였다고 합니다. 12일은 예루살렘에 도착한 날부터 예루살렘에 머문 기간을 계산한 것입니다.(21:17, 1822:3023:12, 32). 바울은 자신이 변론하는 것이나. 소동하케 하는 것을 그들이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바울의 자기 변호는 매우 논리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바울의 주장은 더둘로의 웅변가적이고 선동적인 주장과 대조됩니다. 앞 절에서는 자신의 예루살렘 체류 기간이 짧았다는것을 이야기했는데, 여기서는 대중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전혀 갖지 않았으므로, 그는 정치적 반란자로 고발된 것이 터무니 없다고 합니다. 바울은 성전에서 사람들로 더불어 토론을 벌인 적도 없고 회당과 성 안에서 사람들을 선동한 일도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천부장 루시아가 그의 보고서에 기록하지 않았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한때 소란 사태가 있긴 있었지만 그것은 바울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울을 해치려는 유대인들에 의한 선동의 결과였습니다.(21:27, 28), 그나마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었기에 바울에게는 아무런 흠잡을 일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고발하는 것에 대해서 증거를 내 세울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변론은 논리적이고 치밀하였습니다. 그는 더둘로의 고발이 터무니없는 것임을 구체적인 증거로 증명한 후 이제는 더둘로의 고발이 거짓되다고 합니다. 이로써 바울은 소요 죄에 대하여 무죄함을 증명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절에 의하면 바울은 구금 상태에서 풀려나지 않았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에게 밝혀지지 않은 죄상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거나 공적으로 위험한 인물이라 판단했습니다. 혹시라도 반란의 가능성이 보이면 그를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로마 행정관의 임무였던 것입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다만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예수를 따라서 하나님을 믿으며 의인과 악인의 부활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앞의 정치적인 문제에 이어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변론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바울은 더둘로가 이단이라고 말한 것을 도라고 정정합니다. 유대교와 이 도가 동일한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연속성에 대한 강조는 이 도가 유대교와 동일하게 로마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더둘로가 나사렛 이단이라고 표현할 때 정치적 집단이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이도록 사용한 것에 대해(5절 주석 참조), 결코 반로마적인 정치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의인은 생명의 부활로 악인은 심판의 부활로 나옵니다. 총독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인이 되어 천국가서 부활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향한 소망과 부활이 동일시되고 있고 그것은 곧 유대인들의 신앙과 동일시됩니다.

물론 이 자리에는 사두개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들은 부활을 부정했지만 전통적 유대교 신앙과 기독교의 관계성을 논의하는 이 자리에서 사두개인의 신앙을 표준으로 놓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두개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부활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성경적 근거를 가진 것입니다.(22:23-33). 예수께서도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5:28, 29), 바울이 주로 의인의 부활에 대해 언급한 것이(고전 15:12-58)살전 4:13-5:11) 곧 영원한 심판으로 이어지는 악인의 부활을 배제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서신들은 기존의 그리스도교인들을 향한 목회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자연히 악인에 대한 관심보다는 의인의 부활에 대한 관심이 집중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악인과 의인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서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말합니다. 거리낌 없기를 힘쓴다는 말은 범죄하지 않기를 힘쓴다는 말입니다. 힘쓴다는 말은 부단히 연습하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고전 9:2715:31). 바울은 부활과 심판을 믿고 살았습니다. 부활과 심판을 믿을 때 우리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기본적인 의무를 하고 있습니다.(3:418:2, 4),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로 율법을 요약하신 예수의 말씀과 결부됩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를 강조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비롯한 당시의 종교인들은 사람 앞에서의 의를 위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의 의를 상실하였습니다.(20:46, 47).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동시적으로 의롭게 행하려고 끊임없는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바울의 겸손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종교적인 일만 했음을 강조)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바울은 여러 해만에 유대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결례를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제2차 전도 여행 끝에 예루살렘을 잠시 방문한 것(18:22)을 기점으로 계산하면 4-5년의 기간이 지난 후에 방문한 것입니다. 바울이 민족의 구제를 위해서 무엇을 했다는 언급은 누가의 기록에는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바울 서신들에는 구제헌금에 대한 기록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15:25, 26고전 16:1-42:10). 바울이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고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을 염려할뿐 아니라 그는 늘 자기 민족이 복음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11:13, 14).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가 구제금의 힘을 입어 더욱 열심으로 유대인들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결국은 유대 민족을 위해 유익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바울의 구제금이 직접적으로는 유대 기독교 공동체의 가난한 자들을 돕고 그들과의 사랑의 연대성을 굳건히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이 제물에 대해 언급한 것은 네 명의 서원자를 위하여 바친 제물을 바울의 방문 목적에 소급하여 적용한 것입니다(21:23, 24, 26).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목적 중에는 오순절 예배에 참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고(20:16), 또 그는 늘 율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으므로(14) 전례대로 당연히 제물을 드리려 했습니다. 그는 제물을 드리는 중에 결례를 행하였다고 합니다. 행전 21:26-28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압축한 내용입니다. 바울은 네 사람의 서원자와 함께 있었을 뿐 그밖의 사람들과의 모임은 물론 소동은 없었습니다. 이를 목격한 증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시아에서 올라온 몇몇의 유대인들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사실 바울이 성전에서 결례를 행했던 사실은 성전 관계자들로부터 쉽게 확인될 수 있었으며, 성전 모독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바울이 어떤 모임도 하지 않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소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자신을 고소할 것이 있으면 직접 고소하라고 합니다. 성전에서 바울을 해치려 했던 유대인들(21:27, 28)이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그들은 지금 이 재판정에 나와 증언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 자리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아무런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시아에서 올라온 유대인들은 허위의 사실로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여론 재판식으로 바울을 죽이려 하였으나 그것이 실패하자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을 것입니다.

 

(거듭하여 부활을 증거함)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바울은 더둘로의 고발에 대해 조목조목 반격을 가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마지막 사건에 대해서 자기의 결백을 객관적으로 증거합니다. 바울을 고소할 것이 없으면 바울이 공회 앞에서 있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고 합니다. 공회에 섰을 때(22:30) 바울이 취한 행동 가운데 조금이라도 정죄할 것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나니아 일행이 바울에 대하여 고발한 모든 것은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문제는 다만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심문을 받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공회에서 했던 유일한 발언이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23:6). 죽은자의 부활에 관한 바울의 주장은 로마 법정에서도 산헤드린 법정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로마 법정에서는 그것이 종교적인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에 소송의 건이 될 수 없었으며 산헤드린에서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신앙이 유대교의 정통적 신앙과 일치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벨릭스에게 부활을 은연 중에 전하여 그도 회개하고 천국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활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에게 자유를 준 총독)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벨릭스는 유대교에 대한 것을 자세히 아는 고로 바울이 죄가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벨릭스가 바울의 도에 대해서 어떤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가이사랴에 살았던 전도자 빌립의 영향과(8:4021:8), 그의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에 의해 견문을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유대 지역을 총괄하는 총독으로서 유대의 종교적 상황에 대해서 그런 정도의 정보는 입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벨릭스가 바울의 도에 대하여 산헤드린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거나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재판을 연기하고 바울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주었습니다. 벨릭스는 재판을 휴회하고 휴정하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재판장 벨릭스가 진위가 드러났음에도 판결을 연기하였습니다.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면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판결을 내리겠다는 것도 판결 연기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천부장 루시아가 그의 편지를 통해 모든 사실을 보고했고 바울을 형사 처벌할 혐의점이 없기 때문입니다(23:26-30).

아마 벨릭스는 바울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유대의 최고 종교 지도자인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의 분노를 고려하고 바울에게 뇌물을 받고자하였습니다.(26). 그는 바울의 무죄를 상당 부분 인정하고 바울에 대한 처우를 개선합니다. 바울에게는 훨씬 많은 자유와 후한 대우가 주어졌습니다. 바울은 느슨한 구금 상태에서 쉬거나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했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들어와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수종도 들 수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에 있던 전도자 빌립(21:8),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바울과 동행했던 사람들(20:421:17), 바울의 조카(23:16)등이 바울을 방문하여 위로도 하고 수종도 들었으리라 추측됩니다.

 

(총독에게 심판을 전하는 바울)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얼마 후 벨릭스는 유대아내 드루실라와 더불어 복음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판결이 연기된 후 루시아를 가이사랴로 불러내렸는지, 혹은 그 동안에 아나니아 일행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었는지 등에 대한 언급이 없이 벨릭스가 바울에게 예수 믿는 도를 듣는 이야기가 연결됩니다. 드루실라는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이자 아그립바 2세의 누이이고 버니게의 자매였습니다. 그녀는 A.D. 37년경에 태어났고 처음에는 코마겐의 왕자 에피파네스와 약혼하였으나 그가 할례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파혼하게 되었고 후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수락했던 에메사의 왕 아지주스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때가 그녀는 불과 15세였습니다. 그후 절세의 미녀인 드루실라에게 매혹된 벨릭스가 구브로 출신의 유대인 마술사 아토모스를 동원하여 자신과 결혼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그의 세번째 아내로 삼았습니다. 드루실라와 벨릭스 사이에는 아그립바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A.D.70년 베스비오화산 폭발 때 죽었다고 합니다. 드루실라는 유대인으로서 당시의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도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서방 사본들에 의하면 드루실라가 더욱 바울을 만나고자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벨릭스가 바울의 도를 잘 알았던 것도 아내인 드루실라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의와 절제와 하나님의 심판을 강론하였습니다. 바울은 놀라울 만큼 강직하고 대상에 따라 복음을 적절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기가 하는 이야기들이 벨릭스 부부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안전한 석방을 위하여 이번 기회를 그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릭스 부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벨릭스는 잔인함과 탐욕으로 유명할 만큼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불륜의 관계로 맺어졌습니다.(24절 주석 참조) 그들은 절제와는 거리가 먼 행위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장차 올 심판에서 분명한 응보를 받을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도를 듣고자 하는 벨릭스 부부에게 먼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복음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총독이 회개하여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불의와 방종한 삶을 사는 이들 부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장차 올 심판을 확인시킴으로써 회개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의()를 믿음으로써 받아들이기를 원했습니다. (1:17).

벨릭스는 두려워하여 지금은 가라 틈이 있으면 부르겠다고 합니다. 벨릭스는 바울의 강론을 들은 후 마음의 두려움을 느꼈으나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이상 더 진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세례 요한의 의로운 선포를 인정하여 두려워하였으나 회개하지 않은 헤롯왕과 유사합니다. 헤롯도 불륜의 결혼 관계를 맺었습니다(6:17-29).

 

(돈을 바라는 벨릭스)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벨릭스는 대제사장을 죽인 인물로 지목 받고 있었습니다. 벨릭스는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복음을 영접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돈을 바라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하였습니다. 벨릭스의 두려움은 잠깐뿐이었고 그의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돈을 기대합니다. 그는 바울이 구제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을 자주 불러 돈을 요구하는 말을 간접적으로 전했거나 협박과 회유를 하면서 돈을 주면 석방해 줄 수도 있음을 직접 암시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율리아법에 의하면 돈을 받고 죄수를 풀어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위반하는 경우 관직에서 쫓겨나 추방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관리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불의한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구제헌금을 가지도 왔다는 것을 알고 그 물질의 얼마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고 돈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그의 모습은 바로 현대인들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이년 동안 갇힌 바울)

 

“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두 해가 지난 뒤에,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으로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판결을 연기하겠다고 결정한 후 2년이 경과하였습니다.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면 판결을 하겠다고 해놓고 2년이 지나도록 재판을 속개하지 않았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을 석방하면 유대인들의 비난과 반감을 야기시킬 것이라고 판단하고 계속 바울을 억류시켜 두었습니다. 이스라엘 대중들에게 별 인기도 없는 바울에게 부당한 처사를 행하더라도 자신의 기반은 안전하게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벨릭스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하여, 바울을 가둔 채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보르기오 베스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그가 전임자나 후임자에 비해 성실하고 유능했으며 비교적 선량한 총독으로서 공정한 통치를 하였습니다. 벨릭스에 비해 자기 구역의 강도들을 제거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직무를 이어받았다는 것은 벨릭스가 소환되었음을 뜻합니다. 그의 소환 이유에 대해서는 가이사랴에 있었던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의 내전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에는 가이사랴에 있었던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에는 가이사랴에 주도권 장악을 놓고 분쟁이 있었는데 이 분쟁에 벨릭스가 개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희생되고 투옥당하였으며 재산을 약탈당했습니다. 여기에는 벨릭스의 사리사욕과 잔인성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표를 파견하여 강력한 항의를 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끝내는 소환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그는 소환되어 엄한 형벌을 받아야 했으나 그의 형 팔라스의 중재로 형벌을 면하였습니다. 벨릭스가 물러나면서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구금된 채로 두어 조금이라도 유대인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려하였습니다.

아무튼 바울로서는 전후 사정을 모르는 보르기오 베스도에 의해 다시 재판을 받는 것이 결코 유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로 가고자 합니다. 예수님도 로마에서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처럼 훌륭한 전도자가 이 년 동안 가이샤라 감옥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바울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때를 기다리게 합니다. 더욱 겸손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랫동안 일을 한 바울에게 쉼을 주었습니다. 바울의 가이샤라 이년은 마치 요셉이 감옥에 있었던 이년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휴식을 주시고 몸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친히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아멘!

 

(총독의 목자 바울)

 

바울은 죄수지만 벨릭스의 목자였습니다. 그는 벨릭스를 어찌하든지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벨릭스 총독에게 인도하신 것은 벨릭스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그러나 벨릭스는 이를 거절하고 영접히 않았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물질에 대한 탐욕과 정권욕이 얼마나 큰 죄가 되는 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부활과 심판의 메시지를 들었지만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원의 기회를 잃고 영원히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총독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복음을 들었을 때는 총독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깊이 회개해야합니다.

사도행전 24장 강해 벨릭스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행전 241-사도행전 2427

요절 사도행전 2415절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사도행전 24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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