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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19장 강해 에베소 교회의 제자양성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12-12 00:00:00
조회수 : 5,152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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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9장 강해 일부 에베소 교회의 제자 양성 역사

말씀 사도행전 191-사도행전 1920

요절 사도행전 199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오늘 말씀은 바울의 삼차 전도여행의 시작입니다. 사도 바울의 삼차 전도 여행의 대부분은 에베소 교회역사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제자양성 역사를 섬겼습니다. 그러자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 내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베소와 소아시아 전체에 복음이 전파되게 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가 이때 개척되었습니다. 바울은 참 아들인 디모데를 에베소의 감독으로 세웠습니다. 우리는 에베소 교회 역사를 통해서 제자양성의 비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에베소에 대한 소개)

 

1절을 보겠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아볼로와 바울은 당시 초대교회에 영향력이 매우 큰 분들입니다. 아볼로가 에베소를 떠나서 고린도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바울은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윗지방을 거쳐 에베소에 왔습니다. 바울이 3차전도 여행의 중심지로 삼았던 에베소는 어떤 곳일까요?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서해안 지방에 있는 항구도시였습니다. 위치적으로는 코레소스산맥과 에게해 사이에 있었으며 교통에 요충지입니다. 이곳은 항구도시로써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도시였으며,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독자적인 자치행정을 하였습니다. 이곳은 금과 은과 각종 보석상들이 즐비하게 장사를 하고 있고, 온갖 장식을 한 마차들이 거리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상품을 가득실은 무역선이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이곳은 인구 25만의 거대한 도시로써, 외국인도 많고, 각종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해있습니다. 또한 곳곳에 아데미여신과 제우스신의 우상이 서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당시 각처에서 상인, 예술가, 철학자, 정치인들이 몰려와서 각종 야망을 불태웠습니다. 그러한 번창함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을 살펴보면 각종 미신과 이방 종교들과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있었습니다. 지금 바울이 이러한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방문하였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아는 성도들)

 

2,3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에베소 교회를 찾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신앙상태가 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딱딱했고 은혜롭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고행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신앙상태에 대하여 점검해보았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물음에 에베소 성도들은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하였다 합니다.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요한의 세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짧은 대화를 통해 현재 에베소 교회가 안고 있는 신앙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일찍이 아볼로를 통하여 예수님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볼로의 영향을 받아 요한의 제자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요한 선지자가 그들에게 가르쳤듯이, 그들은 회개하고 천국을 기다리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하고, 주일을 신실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1주일에 두 번씩은 금식을 하므로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을 하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돌로 쳐서 죽여야 합니다. 이곳의 성도들은 신실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성령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거듭나지 못하였고 내면 중심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에베소교인들은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신앙생활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 누구도 그들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바울이 이곳에 와서 에베소교인들의 신앙생활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이 오셨지만, 그들은 아직도 복음이 완성되기 전의 과거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이차 세계대전이 끝났는데도 아직도 숨어서 살아가던 일본 병사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아야함)

 

4-7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바울은 세례 요한이 말한 세례요한 뒤에 오시는 이가 예수님인 것을 가르쳤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왕이요 구주인 그리스도로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는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인으로 믿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주인으로 영접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이미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베드로가 안수하자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성령이 강력으로 임하였고 그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12명쯤 되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은 에베소에서 성도들이 내주하시는 성령님,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하도록 도왔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238절에는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은 깨끗한 하나님의 영입니다. 우리 내면에 주홍같은 죄의 씨앗이 있을 때에 성령께서 내주하실 수가 없습니다. 고해성사로 죄를 고백한다고 해서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 내면이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성령을 존귀히 여기고 성령을 충만히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공개적으로 전하는 바울)

 

8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바울은 거듭난 사람들로 인하여 힘을 얻어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하였습니다. 그는 죄사함의 복음, 에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신 목적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빨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여러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곳에서 세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였습니다. 여기서 강론했다는 것은 안식일날 공개적으로 설교했다는 말입니다.

 

(공개적으로 비방하는 사람들)

 

9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한참 말씀을 전하는 도중에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마음이 굳어진 사람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건드리면 독기를 뿜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 옆에 있다 보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강포합니다. 평소에 웃던 사람도 마음이 굳어지면 웃음이 사라집니다. 또한 이들은 순종치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알고 무시합니다. 회당에 이들이 들어오자 분위기가 냉각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개의치 않고 계속하여 대중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 분만의 우리를 구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한창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어떤 이들이 무리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지 않고 소극적으로 앉아있는데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말씀전파를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대적자 중에 수장이 외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이 사람들이 우리들을 바보로 아나, 좀 증거를 대야지 그 따위로 해서 우리가 믿으란 말이오. 증거를 되시오. 우리가 믿는 아주 실력있는 분이 계신데 그분을 믿어보는 것은 어떻겠소. 괜히 선한 사람 미혹하지 말구요, 여러분들 더 이상 바울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소.’ 회당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마음이 굳고 순종치 않는 자들은 바울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였습니다.

일부 말씀을 청종하던 사람들까지 이러한 어수선함 속에 말씀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서서히 믿음 성장하려는 어린 양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장할 수 있는 양분이 필요했으나, 회당에서는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혼란케 하였습니다. 세 달 동안을 그렇게 말씀을 전하였으나, 매일같이 이런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싫으면 나오지 말아야 할텐데, 오히려 회당에 나와서 비방하고 말씀 전파를 방해하였습니다.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말씀을 가르친 바울)

 

9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바울은 기존에 했던 방식으로는 이곳에 말씀을 전할 수 없음을 알고는 공개강좌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방식대로 말씀을 전해서는 시대와 환경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결국, 이 무리 중에 순종하고 배우고자하는 제자들을 따로 세워서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치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여기서 제자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 구별되는 겸손히 배우고자 하고 순종하는 자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순종하지 않는 자를 붙들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겸손히 순종하는 자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장소도 회당에서 두란노 서원으로 옮겼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헬라 철학자들이 수사학과 철학 또 수학도 가르치는 강의실이었습니다. 여기서 강론은 앞서 강론과 달리 디스커션입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대중설교가 아닌 토론식 말씀공부를 하였습니다. 문답식 교육을 하였습니다. 제자들과 마주 앉아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쳤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네 시까지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베자 사본에는 바울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가르쳤다고 합니다. 전에는 안식일만 가르쳤지만 이제는 매일 11시부터 4시까지 지속적으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바울에게 물어보았고 바울은 또한 제자들에게 자상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하고 있는 Man to Man 성경공부, Group Bible Study 등과 같습니다. 날마다 인격적으로 말씀을 가르쳐야 말씀이 내면화됩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밤낮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밤에도 바울을 찾아오면 그들에게 좀더 자세히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집중적인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에베소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반복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알고 그들의 삶이 변화되기까지 이삼년을 도왔습니다.

 

(눈물로 훈계한 바울)

 

10절을 보십시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바울은 이년을 가르쳤습니다. 나중에 회상을 보면 거의 삼년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3주를 가르쳤습니다. 가장 오래있었던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에서는 무려 삼년이나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순종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울은 말씀을 가르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순종하기까지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각자 가정에서 삶을 나누게 도왔습니다. 서로 사랑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삶이 점점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03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바울은 흉악한 이리와 같은 거짓 사상이 만연한 에베소에서 제자들을 눈물로써 훈계하였습니다. 흉악한 사상을 버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순종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를 바울은 회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도왔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버리며 도왔습니다. 우리도 죄악된 양들을 도우려면 많은 눈물을 흘려야합니다. 바울은 눈물과 훈계로써 에베소교인들을 순종하기까지 훈련시켰습니다. 무려 이년 육 개월을 그렇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으면 말씀이 우리 삶 속에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일은 바로 순종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들이 장차 소아시아와 세계선교에 주역으로 쓰일 것을 믿고 가르쳤습니다. 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을 때 그들이 주변에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성경선생이 되어 바울을 동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은 영적 사관학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두란노 서원의 제자들처럼 영적 성경선생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두란노서원에서 제자들이 장차 장로가 되어 교회를 감독하고 보살피는 목자들로 성장하기까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목자로서 바울과 같이 자신을 희생하도록 도왔습니다. 이러한 말씀공부를 통해 에베소에 변화의 역사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소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에베소 교회개척뿐 아니라 골로새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등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1:11). 11절에서 20절까지는 에베소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바울은 이때 갈라디아서를 집필하였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것이 분명합니다.(고전16:8) 그는 아주 절대적인 자세로 자신이 깨달은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과 타협치 않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해야 복음을 분명히 알고 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일어나는 기적들)

 

11,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의 손으로 안수하면 악귀가 떠나는 것은 예사로 있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얹어도 귀신이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바울과 함께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바울에게 간 어떤 이들은 바울의 손수건과 앞치마를 빼앗고는 병든 가족이나 친구에게 얹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과 함께하셔서 병이 낫고, 악한 귀신이 나갔습니다. 바울에 대한 경외심이 손수건에 대한 경외심으로까지 나타났습니다. 주변에서 이 일을 본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우와, 하나님이 누구시길래, 이것 좀 봐 하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울을 주의 종으로 경외하였습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당한 부끄러움)

 

13-16절을 보십시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이때 주변을 지나던 마술사가 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도 능력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이 마술사 중에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아버지 스게와는 당시 제사장 행세를 하고 있는 권력자였으며, 그 아들들은 마술사였습니다. 제사장 아들이 마술사였다는 것을 통해서 당시 에베소가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목사의 아들이 무당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인기를 얻고자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귀신아 나와라 했습니다. 바울이 성경을 통하여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한 것을 흉내내어 하였습니다. 스게와의 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명하니 갑자기 귀신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귀신의 목소리로 야 누가 나 불렀어 너희들이냐. 왜 불렀는데! 스게아의 아들들이 다시 소리쳤습니다.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그러자 귀신들린 사람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고 소리치며 잡아먹을 듯이 맹수처럼 달려들어 옷을 벗겼습니다. 너무 다급한 나머지 스게와의 일곱 형제는 옷도 채 입지 못한 채 벌거 벗기운 채로 무리 사이로 도망갔습니다. 스게와의 아들들은 예수의 이름을 믿지 않고 말로만 예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사단은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하나님의 종을 알아보고 도망갑니다. 또한 믿음없이 행위만 있는 사람도 알아보고 공격합니다.

 

(마술사들의 회개)

 

17-19절을 보십시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 모습을 보고는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이 다 과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 이후로 많은 이들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특히 마술사들이 자신의 마술이 헛된 것을 깨닫고 은 오만어치,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약 40억 원어치의 마술책을 불사르기도 하였습니다. 마술사에게 있어 마술책은 생계와 관련있는 책인데 이것을 불살랐습니다. 복음은 마술과 다릅니다. 마술은 사람들의 지혜와 힘에서 나온 한계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죄사함을 받을 때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일 때 일어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일어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말씀이 힘을 얻는 역사)

 

20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 역사의 비밀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세력을 얻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순종하게 돕자 말씀이 힘을 얻었습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이 일하시면 병도 낫고 귀신도 떠나가게 됩니다. 에베소에는 이때가지 마술이 세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마술이 그들의 생각과 마음과 생활을 지배해 왔습니다. 마술의 세력은 거대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전파되었을 때 말씀이 힘이 있어 이를 파하였습니다. 이제는 말씀이 세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세력도 파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4:12).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모든 것이 드러나고 맥을 못 추게 됩니다. 이는 강렬한 태양 아래 모든 것이 녹아나고 힘을 이렇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물질주의와 육신주의, 인본주의, 사회주의 등 여러 가지 세력이 있습니다. 이런 세력들은 노도와 같이 우리를 삼키고자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영혼의 세계에까지 깊이 침투하여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력들 앞에 무력하게 삼킨 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어 이런 세력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꾸준히 공부해 나갈 때 말씀이 내 마음 가운데 세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와 같이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주의 말씀이 힘이 있고 세력을 얻는 일이 충만히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19장 강해 일부 에베소 교회의 제자 양성 역사

말씀 사도행전 191-사도행전 1920

요절 사도행전 199절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사도행전 19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사도행전 19장 강해 이부 로마전도의 비전

말씀 사도행전 1921-사도행전 1941

요절 사도행전 19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사도바울은 에베소의 놀라운 구원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순종하는 자를 중심으로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얻었습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병이 치료되었습니다. 주변에 복음이 급속도로 전파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그 후에 사도바울이 본 비전이 나옵니다. 그리고 에베소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쳤는지 나오고 있습니다.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비전)

 

21절을 보십시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바울은 에베소에서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후에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작정하였습니다. 이차 전도여행을 한 빌립보 데살로니카를 거쳐서 고린도를 지나서 예루살렘에 구제 헌금을 주고 로마 선교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내가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도 보아야하리라 비전을 가졌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수도였습니다. 그는 로마를 통하여 서바나까지 가서 세계선교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대개 일이 잘 되면 안일해지고 이에 만족하기 쉽습니다. 개척기에 감당한 고생을 생각하고 더 이상 개척하고 싶지 않습니다. 양들로부터 존경과 사랑만 받고 그곳에 주저앉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바로 이때 놀라운 세계 선교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개척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의 역사를 통해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새로운 믿음과 비전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말씀 역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마도 말씀으로 능히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 믿음으로 대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하고자 하는 웅장한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이 비전 가운데는 로마를 통해 전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고야 말리라는 의지와 희망이 불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비전을 가졌을 때 하나님은 바울의 소원을 받으시고 바울을 로마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비전대로 로마를 개척하였습니다. 로마 선교를 통하여 복음은 세계화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기록함)

 

22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을 돕는 사람 중에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신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바울은 에베소에 좀 더 있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는 디모데 편에 고린도전서를 기록하여 전달합니다. 고린도전서 168절에서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고 있음을 말합니다. 고린도서를 보면서 우리는 에베소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온갖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일 먼저 제시한 것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바울은 우리 위해 고초를 겪고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 정신을 생각한다면 교회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몸소 보여 주신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유명한 사랑장’(13)을 통해 교훈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론부에서 다시 한번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에베소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에베소 문화의 변화)

 

23-29절을 보십시오.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데미 여신상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고 눈에 보이는 아데미 신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아데미의 은감실(은으로 만든 신상의 집) 제조로 유족한 생활을 하고 있던 데메드리오와 그 동업자들이 실직을 하게 이르렀습니다. 아데미는 달신으로서 대지(大地)의 어머니라고 하는 최고의 여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은감실로 안에 여신상을 집마다 안치하기도 하고 부적과 같이 허리에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그는 여신상을 팔아 벌던 돈벌이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는 셈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여 자신의 수입이 줄었다고 생각하여 군중을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들이 예수님을 증거하여 우리가 그동안 섬기고 우리를 보살피던 아데미 여신의 위엄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같이 다니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데리고 극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데미 신상을 찬양하는 사람들)

 

30-34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바울은 극장으로 들어가 이들을 권유하고자 하였으나 친구와 제자들이 만류하여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군중심리로 모였지 왜 모였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알렉산더가 이야기 하고자 하였으나 그들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고 크다 아데미 신이여를 두 시간이나 반복하여 외쳤습니다. 이 사건은 복음으로 인해 기존 우상 문화가 큰 도전을 받고 무너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복음이 들어가자 조용하던 이곳에 큰 파문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은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모든 기존 우상문화에 도전함으로 그릇된 가치관을 파괴시키고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해 나아갑니다. 우리가 불신자 가정에서 핍박을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복음역사가 일어날 때 낡은 우상문화가 파괴됨으로 반드시 이런 반대 세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불법 집회를 해산시킨 서기장)

 

35-41절을 보십시오.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서기장이 무리들을 진정시키며 에베소는 아데미와 제우스를 섬기는 곳으로 다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울과 함께 다니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도둑질도 아니하였고 여신을 비방하지도 않았다고 변호하였습니다. 만일 데메드리오와 직공들이 고소할 것이 있으면 법정이나 민회를 통하여 해야지 이는 불법집회라고 하였습니다. 서기장의 말을 통하여 모인 사람들은 해산되었습니다. 이것이 전례가 되어 복음 전파를 정치가들이 간섭하지 않고 자치권을 주었습니다.

 

(문화의 변혁을 가져오는 복음)

 

우리는 에베소의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죄악된 문화가 변하는 실질적인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음란하고 물질적인 장사가 안되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회식자리가 변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바보 같았지만 이제는 술을 마시는 자들이 구석에 모여 민망하게 술을 마셔야 합니다. 전에는 담배를 피던 자들이 떳떳히 담배를 피울 수 있었지만 복음이 있는 곳에서는 이러한 것이 마치 마약과 같이 되어 법으로 규제가 되어야 합니다. 술 파는 사람들과 담배 파는 사람들이 복음을 인해 장사가 안 된다며,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홍보를 해달라고 국회에서 데모를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에 음란물이 너무 잘 팔려 이곳 저곳에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강력으로 임할 때에 음란물을 보는 자들이 적어지고, 또한 종사하는 사람도 적어서 장사가 안 된다고 하소연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겜방이나 겜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망하는 사회를 만들어야합니다. 에베소에서 아데미상이 무시당한다고 시위를 한 것처럼 우리사회도 순수 복음이 전파되어 예수님 중심의 문화가 곳곳에 뿌리내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복음의 능력을 통하여 세계선교의 비전에 불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19장 강해 이부 로마전도의 비전

말씀 사도행전 1921-사도행전 1941

요절 사도행전 19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사도행전 19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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