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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16장 강해 마게도냐로 인도하신 하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12-03 00:00:00
조회수 : 3,53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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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장 강해 일부 마게도냐로 인도하신 하나님 515

말씀 사도행전 161-사도행전 1615

요절 사도행전 169절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사도행전 14장은 일차전도 여행이고 15장은 예루살렘 총회입니다. 16장은 2차 전도 여행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복음을 분명히 하시고 이제 이차 전도여행 중에 유럽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일행을 안디옥에서 마게도냐의 첫성 빌립보로 인도하시고 바울은 그곳에 가서 전도합니다.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선교역사가 전환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 일을 이루셨고, 바울이 어떻게 순종하였으며, 바울이 순종했을 때 어떤 역사가 이루어졌는가 나옵니다.

 

[순교의 피로 얻은 디모데]

 

1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바울은 일차 전도여행 지역을 다니며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습니다. 루스드라는 바울이 죽었다가 살아난 곳입니다. 바울은 핍박받은 루스드라를 갈 때 감정과 몸이 트라우마로 인하여 거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의지적으로 루스드라에 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에게 디모데라는 아주 좋은 제자를 주셨습니다. 디모데후서 14,5절을 보면 디모데는 눈물이 많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순수하고 목자의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그는 거짓없는 믿음을 가진 진실된 자요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위로와 힘을 줍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순교신앙으로 얻은 제자입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요 아버지는 헬라인입니다. 유대인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녀를 유대인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칭찬받은 디모데)

 

2절을 보십시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 자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았습니다. 디도서에 보면 형제에게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사람, 곧 칭찬 받는 자를 장로나 감독으로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평판도 중요합니다. 나중에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됩니다.

 

(디모데를 제자로 삼은 바울)

 

3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함께 선교여행을 떠나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를 복음의 동역자로 삼았습니다. 복음역사를 감당코자 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믿음의 동역자를 얻는 일입니다. 바울이 개척하면 디모데는 그 교회를 맡아서 양육합니다. 복음역사는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독불장군처럼 혼자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께는 배사라 선교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역사를 섬길 때 반드시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복음역사를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비결은 동역자를 얻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동역자를 얻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소신을 포기한 바울)

 

디모데는 아버지가 헬라인이므로 할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하게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하지 않은 디모데로부터 복음 듣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들은 디모데가 할례를 하지 않았음으로 이방인 취급하였습니다.

바울은 할례를 하지 않아도 구원 받는다는 소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복음 진리를 위해서 할례를 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와 심하게 싸웠습니다. 이런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교회에도 다녀왔습니다. 바울은 할례가 구원과는 관련이 없다고 굳게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디도에게는 할례주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갈라디아서 23)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할례를 반드시 할 필요가 없다고 결의하였습니다. 그는 각 교회에 그 규례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하고자 디모데에게 할례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소신에서 자유함이 있었습니다. 디모데를 이방인과 유대인들의 지도자로 키우고자 하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할례를 할 수 있는 자유함도 있어야합니다.

바울은 소신이 있었지만 그 소신은 복음을 위한 소신이었습니다. 그는 복음 안에서 자유가 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소신을 지키기도 하고 복음을 위해서 소신을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20절을 보면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고,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되었습니다. 이는 아무쪼록 그리스도 안에서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었습니다. 바울의 목적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받게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도 신세대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어야합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경우는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습니다. 미국 사람에게는 한국문화를 고집하지 말고 미국 문화를 존중해야합니다. 그러나 제자 양성을 할 때는 성경적인 문화를 가르쳐야합니다. 우리가 문화를 수용하되 복음의 핵심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지키는 보수적인 교회가 성장합니다.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

 

4절을 보십니다.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바울은 여러 성으로 가며 은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하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확신을 갖고 신앙 생활하도록 도왔습니다. 다만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최소한의 율법을 갖게 하였습니다. 목메어 죽이는 것과 음행, 피흘리는 것을 금하게 하였습니다. 구제를 섬기게 하였습니다.

 

(굳게 서가는 교회)

 

5절을 보십시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바울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하여졌습니다. 교인의 수가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알 때 교회는 굳게 섭니다. 은혜의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숫자가 늘게 하십니다. 은혜의 복음이 교회 부흥의 원동력입니다.

 

[말씀 전하는 것을 막으시는 성령님]

 

6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바울은 아시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북쪽의 비두니아 본도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말씀 전하는 것을 도우시나 때로는 성령께서 말씀 전하는 것을 막이실 때도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열매도 없었고 안 좋은 일만 계속하여 생겼습니다. 버스를 타면 펑크가 나고 걸어가면 피곤하여 걸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하여 예루살렘 전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환상을 보여서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사울에게 나타나 사울을 회심시켰습니다. 그 성령께서 이제는 바울의 전도 방향을 막으시고 새로운 곳으로 전도의 방향도 인도하십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바울)

 

7절을 보십시오.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 일행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폭설설, 파업설(소수유력설), 차표 한 장 손에 들다 분실설(단독무력설)이 있습니다. 바울이 음식을 먹으면 체하고 설사가 났습니다. 또 말씀을 가르치고자 하면 혀가 잘 돌아가질 않았습니다. 바울은 성령이 막으실 때 바나바와 싸워서 그런가 하며 자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아시아 선교 열정에 사로잡혔을까요? 바울은 1차 선교여행을 통해 갖게된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 때문입니다. 이들은 우상숭배와 마술과 음행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돕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개척정신도 충만했습니다. 무시아에 이른 바울은 흑해 바로 밑쪽인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북쪽으로 북쪽으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결코 뒤로 물러 설 줄 모르는 불굴의 투사입니다. 그의 인생 철학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였습니다. 그는 "안 되면 되게 하라. 막힌 길도 뚫어라" 외치며 계속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영이 이것도 허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영과 바울의 영적인 씨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상하게 계속 bus를 놓치고 또 타면 거꾸로 가는 것을 탔습니다. 오랜만에 바르게 가는 것을 탔는데 이제는 또 펑크가 났습니다. 운전사는 "돈을 돌려 줄 테니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막고 계셨습니다. 성령께서 막으실 때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역사의 주체자가 성령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전도의 길을 여시기도 하시고 막으시기도 합니다.

대개 복음역사의 주관자를 단체나 개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임도 성령께서 주관자가 되셔서 인도하고 계십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어느 나라를 개척하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인간적인 이상이나 야망이 개입되어 있으면 성령께서 막으십니다. 혹은 성령의 다른 뜻이 있어도 막으십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사건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리빙스톤이 중국으로 가고자 하였는데 아프리카로 인도하셨습니다.

 

(도와 달라는 마게도냐 사람)

 

8,9절을 보십시오.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막으시자 이번에는 북쪽으로 가지 않고 서쪽인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바울은 두 번이나 길이 막히자 북쪽으로 가는 것이 마음에 거리끼고 확신이 안 생겼습니다. 드로아로 내려간 바울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께도 sorry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시아 선교를 하고자 하는데 왜 막으시는가?" 답답한 마음으로 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습니다. 바울은 어찌하든지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울이 안타까웠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 바울에게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실라에게는 환상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계선교의 총감독은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서 바울의 선교 방향을 잡아주었습니다. 환상은 인간의 한계에서 찾아옵니다. 환상은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찾아옵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밤에 나타나서 그에게 청하여 마게도냐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환상 중에 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헝클어진 머리에 시커멓고 힘이 하나도 없고 두 눈이 쑥 들어간 유럽인이었습니다. 그는 서서 빼빼 마른손을 흔들며 계속 간청했습니다. "바울 목자님,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와 주시오! 제발 도와 주세요!"

마게도냐 사람은 헬라사람입니다. 정신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에서는 철학자를 만나지 않고는 거리를 거닐 수 없을 만큼 철학자가 많았습니다. 또한 이들은 로마의 물질문명 속에서 풍요롭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이들은 문화인이요 지성인이며 선진국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메말라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배가 고파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불안으로 점을 치기 때문에 점쟁이 재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미신과 악령에 지배당하며 온갖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신을 만들어 놓고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허탄한 것을 좇으며 허무의 종노릇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허무하기 때문에 쾌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아덴에는 쾌락을 추구하는 에피큐로스학파가 있었고, 고린도의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천명 이상의 매춘부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쾌락에 빠진 후에는 죄의식과 악령에 시달렸습니다. 그들은 천국에 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복음 전해주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죄의 복음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목자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도자를 찾는 시대)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의 로마, 미국은 세계 각 나라에서 유학생들이 몰려드는 선진국입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여 겉은 마치 에덴 동산과 같습니다. 그러나 속은 소돔, 고모라 같이 부패해 있습니다. 유명 스타들은 AIDS로 죽어가고, 클린턴 행정부는 게이들이 군복무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였습니다. 또 이전의 Bush 행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마약에 중독되어 몽롱한 상태에서 흐느적거리며 "와서 우리를 도와 주시오" 하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구 소련의 붕괴로 성립된 CIS는 어떠합니까? 그들은 지난 70년 동안 신봉해 온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버림으로 사상의 진공상태를 겪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나 시장경제보다도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중국은 어떠합니까? 현재 중국에는 일찍이 수많은 선교사들이 뿌린 순교의 피로 인해 가정 교회만 5,000만의 성도가 있다고 합니다. 모택동 공산 정권이 들어선 이후 선교사들이 모두 추방조치 당함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목자 없이 임의로 모여 예배 보고 성경이 없어 복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개인 신앙이 약하여 이단이 와서 유혹하면 쉽게 넘어간다고 합니다. 이들은 복음 진리에 기초한 훈련된 성경선생들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서구나 동구나 아시아나 어디나 다 영적으로 갈급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미국으로 와서 우리를 도와 주시오. CIS로 와서 우리를 도와 주시오. 중국으로 와서 우리를 도와 주시오. 라트비아로 와서 우리를 도와 주시오" 세계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의 간절한 음성을 들어야겠습니다. 우리가 본국에서 안주하지 않고 이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와서 우리를 도와 주시오" UBF에도 76년 사건 후에 이사무엘 선교사님을 미국으로 보내서 성령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때 망했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크신 일을 하고 은혜의 역사를 맛보았습니다.

 

(자기 계획을 내려놓은 바울)

 

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이 환상의 의미가 마게도냐 사람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인도하신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라는 말이 처음 등장합니다. 우리는 누가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제자 누가를 얻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받으시고 누가를 바울에게 동역자로 주셨습니다.

비을은 곧바로 순종하여 마게도냐로 떠나고자 힘썼습니다. 바울은 즉시 자기 청사진을 버리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어찌하든지 아시아를 개척코자 했기 때문에 미련을 두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침없이 순종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버렸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방향을 민감하게 좇았습니다. 바울은 마치 군인과도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에 언제든지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이 자기 욕심이나 사심이 없었고 순수했습니다.

우리가 자기 야심이나 욕심을 부리고자 하면 성령의 방향에 즉시 순종할 수 없습니다. 러시야 양이 손짓하고 중국 양이 손짓해도 안 보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방향에 예민하게 즉시 순종할 수 있으려면 좀더 순수해지고 좀더 영적인 종들이 되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배울 수 있는 것은 선교지는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드로아에서 누가가 합류함)

 

또한 여기서 우리는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누가가 선교팀에 합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연약한 질병을 아시고 하나님은 누가를 주치의로 붙여주셨습니다. 바울이 최선을 다할 때 그 열매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좋은 제자 누가를 얻었습니다. 누가는 바울을 로마 감옥에까지 따라가며 복음을 배웁니다. 그리고 유명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나 열매가 없을 때 하나님은 동역자를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에게 강하심을 드러내주시는 분이십니다.

 

(세계 선교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러면 성령께서 바울을 왜 마게도냐로 인도하셨습니까? 성령께서는 바울이 계획했던 것보다 더 큰 뜻을 두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아시아에 머물게 되면 더 이상 복음이 세계로 뻗어 나가지 못하고 흑해에 가로막혀 버립니다. 세계선교를 위해서 유럽으로 가는 길이 옳습니다. 그곳에는 언어도 통일되고 길도 나있었고 민주적인 곳이었습니다. 이곳에는 하층민으로부터 복음을 전해지지 복음이 점점 퍼져나갔습니다. 복음은 민초들의 힘이 큽니다. 이 때문에 성령께서는 마게도냐로 인도하시고 아울러 로마 개척의 기초를 놓고 땅끝까지 이르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바울은 목자의 심정이 있고 세계선교에 대한 소원이 강렬하나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그는 막힌 곳으로 가고자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눈먼 강아지와 같습니다. 인간의 계획이 아무리 좋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에는 미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눈은 시공간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과 직장에만 왔다 갔다 하다보면 마음이 좁아지고 눈앞의 일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롯데월드라도 올라가 보면 멀리 보이고 가슴이 탁 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멀리 내다보시며 전체적으로 보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보다 더 역사적이고 더 높고 깊으며 더 크십니다. 이사야 558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이렇게 바울이 계획했던 것보다 더 큰 뜻을 두고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우리 길을 계획해도 그 걸음을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 ubf를 인도하신 하나님)

 

성령께서는 우리 모임을 인도해 오실 때도 우리보다 더 큰 뜻을 두시고 인도해 오셨습니다. 1960년대에 우리 모임은 동남아 선교만 부르짖었습니다. ubf 신문 제목도 "동남아의 주춧돌"이었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을 동남아의 사도 바울이라 불렀습니다. 모두다 동남아 선교를 위해 자나깨나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1차로 제주도에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8년 동안 기도하다가 드디어 동남아 싱가폴에 선교사 한 분을 파송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그곳에 가서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동남아 선교의 길을 막으시고 대신에 서독과 미국 같은 선진국 선교의 길을 여셨습니다. 간호사와 광부들을 통하여 독일에 가는 길을 여시고 그들이 비자가 만기 되었을 때 미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특히 1977년 이사무엘 선교사님을 미국으로 파송한 이후 10년 동안 미국 개척 역사를 흥왕케 하셨습니다.

지난 1985년부터는 이사무엘 선교사님을 통해 공산권의 종주국인 소련 선교를 위해 기도하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불가능한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의 고로비인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쓰셔서 철의 장막을 개방케 하시고 현재 CIS에 많은 선교사님을 파송하여 왕성한 복음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등소평을 통해 중국의 개혁, 개방을 가속화하게 하심으로 중국 선교의 문을 열고 계십니다. 한중수교는 중국선교의 서막을 알리는 팡파르 소리입니다. 이제 중국에 나갈 길은 얼마든지 열렸습니다. 성령께서 CIS와 중국 선교를 위해 강력히 역사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 이런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역사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영적 그린베레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선교지인 북한과 모슬림을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아무도 환영하는 자가 없는 빌립보)

 

11-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였습니다.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습니다.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마게도냐 지방의 첫성이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고 이곳에 왔습니다. 자신을 도우라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보고 왔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해달라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 것을 기대하고 왔습니다. 교황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대대적인 환영을 받듯이 환영을 받을 줄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적어도 환상 중에 본 한 사람은 나와서 영접해줄 것을 기대하고 왔습니다. 바울이 유럽 개척과 큰 환상을 보고 빌립보에 왔지만 아무도 그를 (welcome!) 피켓을 들고 환영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환상 속의 손짓하던 사람도 없었습니다. 내가 혹시 환상을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어떻게 거대한 유럽을 개척할 것인가 막막하였을 것입니다. 환상은 컸지만 현실은 광야와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수일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 하였습니다. 그들의 거처할 곳도 없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회당도 없어서 기도할 곳도 없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이 어떻게 빌립보 개척 역사를 시작하였습니까?

 

(기도처를 찾아 복음을 전한 바울)

 

13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바울일행은 아무일도 할 수 없을 때 기도할 곳을 찾으러 강가로 나갔습니다. 빌립보에는 유대인이 많지 않아서 회당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이 없을 때는 주로 강가에서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하고자 하였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바울 일행이 기도하러 간 그곳에 여자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자매님들이 모이면 대개 좀 시끄럽습니다. 세 사람만 모여도 접시가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하다가 깨진다고 합니다. 바울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로 인하여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기도를 할 수 없자 그는 모인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여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전에는 주로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제는 강가에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당시 여자님들은 수에도 넣지 않을 만큼 무시받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자들을 존중히 여기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을 통해 우리는 개척 역사를 감당하는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바울은 기도로 환경을 극복했습니다. 그는 빌립보에 갔을 때 회당이 없어 복음 전할 환경이 안 된다고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회당도 없고 강당도 없지만 기도로서 환경을 극복하고자 했고 강가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여자들에게 복음역사를 감당했습니다.

보통 환상을 본 후 큰 환상 때문에 구체적으로 역사를 섬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환상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환상은 망상으로 끝나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유럽 선교의 큰 환상 가운데 구체적으로 강가에서 자매님 몇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현재 오천 선교사 파송의 큰 환상이 있습니다. 성경 66권 강해를 쓰고 성령의 강물이 흐르는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오천 선교사 파송 백개 지부를 개척하는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합니다. 우리가 이런 현실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은 기도하고 한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 구체적으로 학과공부를 하고 어학을 정복하기 위해 한 단어 한 단어를 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바울을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루디아의 마음을 여신 하나님)

 

14절을 보십시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여러 자매들 가운데 한 자매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강가에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하는 한 여자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물질적으로 넉넉한 사람입니다. 국제감각이 있었습니다. 루디아가 마게도냐에서 오라고 부른 그 사람처럼 보입니다. 바울의 구체적인 순종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마음을 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마음을 열어주신 것은 빌립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신 것이요. 나가서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세계선교의 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결국 바울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한 사람은 바로 루디아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기도하러 가는 것을 통하여 루디아에게 인도하셨습니다.

파불로스타 오선교사가 성경선생을 보내달라는 백일 기도를 받으시고 하나님은 안요셉 선교사님을 유엔에서 스페인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파불로스타오 선교사님의 마음의 문을 여시가 스페인 개척을 이루셨습니다.

 

(루디아 집의 가정교회)

 

15절을 보십시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는 만약 나를 주를 믿는 자로 알거든 나의 집에 유하라고 강권하였습니다. 그는 마음의 문이 열리자 집의 문도 열어주었습니다. 루디아는 바울 일행에게 숙식을 제공하고자 하였습니다.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놓았습니다. 루디아는 사랑이 넘쳤습니다. 물질로 섬기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사생활을 희생하면서 가정을 교회로 제공하였습니다. 바울은 루디아의 집을 가정교회로 삼아서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루디아 한 사람을 복음의 동역자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보면 그 가정에 예수 믿은 형제들도 모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적인 여종 루디아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거대한 빌립보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house church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강해 일부 마게도냐로 인도하신 하나님 515

말씀 사도행전 161-사도행전 1615

요절 사도행전 169절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사도행전 16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사도행전 16장 강해 이부 빌립보 감옥에서 성령의 역사

말씀 사도행전 1616-사도행전 1640

요절 사도행전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기도하러 가다가 고통하는 여종의 귀신을 쫓아내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그곳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찬송하자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 간수와 죄수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기도하고 고난 중에 찬송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시 기도하러가는 바울)

 

16a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바울은 루디아 한 사람을 얻은 후에 다시 할 일이 없었습니다.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습니다. 그는 회당을 중심으로 역사를 섬긴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어려웠습니다. 바울은 이때도 다시 기도처로 기도하러 가고 있습니다. 빌립보에 와서 처음에도 기도처를 찾았고 지금도 기도하러갑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전에 항상 기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처음 한 것은 기도처가 있는가 알아보고 기도하러 간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기도하러 갈 때 루디아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또다시 기도하러 갈 때 귀신들린 자를 만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도 기도할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복음 역사를 방해하는 귀신)

 

16b,17절을 보십시오.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은 기도하러 가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는 쪽집개 점을 쳐서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였습니다. 여기서 볼 때 점쟁이는 귀신이 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은 그 여종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린 여종은 심히 괴로웠습니다. 그는 바울을 따라다니며 바울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요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입니다 귀신도 맞는 말을 합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바로 더러운 귀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따라다니며 매일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만 됩니다. 귀신은 바른 말을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주의 종을 괴롭힙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바울)

 

18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바울은 종이 하는 말이 맞는 말이지만 귀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귀신의 말이 맞지만 귀신을 이용하거나 그 힘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세계 교회를 하나로 하겠다는 사람들은 귀신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사단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마케팅과 엔터테인먼트와 심리학의 힘을 빌려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자 심히 괴로웠습니다. 바울은 그 귀신에게 명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생전에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은 동일하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자 귀신이 즉시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든지 능력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중풍병자를 고쳤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지금도 동일하게 능력이 있습니다.

 

(사회 소란죄로 갇힌 바울)

 

19-21절을 보십시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바울이 여종의 귀신을 쫓아내자 여종은 이제 점을 칠 수 없었습니다. 여종의 주인은 돈을 벌 수 없었습니다. 주인은 이익이 끊어졌습니다. 그들은 손해가 나자 바울을 핍박합니다. 그들은 이해관계에 따라서 바울을 대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귀신을 쫓아냈다는 이유로 핍박한 것이 아니라 사회소란죄로 바울 일행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사회를 소란하게 하며 새로운 풍속을 전하여 로마풍속을 해친다고 고소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기독교의 문화를 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회질서 문란죄로 바울을 고소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런 고소 속에는 그들의 이해관계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매맞고 감옥에 갇힌 바울)

 

22-24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주위에서 주인의 사주 받은 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바울의 일행을 고소하였습니다. 상관들이 재판도 하지 않고 로마인인 바울의 옷을 찢어벗기고 매를 많이 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 보면 자신의 고백에서 많은 매를 맞았다고 하였습니다. 바울 일행은 많은 매를 맞았습니다. 온 몸은 상처투성이고 피가 흘렀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치료도 해주지 않고 밥도 주지 않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발에는 차꼬가 채워지고 손에는 쇠사슬이 묶였습니다. 그들은 바울 일행이 도망갈까봐 든든히 옥문을 지켰습니다. 도망가지 못하게 깊은 지하감옥에 갇혔습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환상을 보고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은 많은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좋은 일을 하고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바울)

 

25절을 보십시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까지 잠을 자지 못하였습니다. 억울하고 슬픈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때도 기도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한밤 중에 손을 들고 죄수들이 다 들을 정도로 기도하고, 기도하다 보니 하나님을 크게 찬송하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세 번째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는 기도할뿐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하소연하는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바나바와 싸워서 그런지? 이런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회개하며 기도하자 하나님은 놀라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대우 받는 것에 감사하였습니다. 핍박을 하던 자가 핍박 받는 자가 되게 하신 것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를 향한 한없는 사랑에 감사하였습니다. 핍박 받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상급을 바라며 기뻐하였습니다.

다윗도 시편에 보면 처음에는 하소연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찬양하고 감사하는 기도를 합니다. 이런 찬송을 주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들이 고난 받을 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고난 받는 자와 함께 하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성령이 찬송할 마음을 주십니다. 성령이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찬송하면 성령이 임하십니다.

 

(큰 지진으로 임하신 하나님)

 

26절을 보십시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자 큰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매인 것이 다 풀렸습니다. 찬송할 때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찾아와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기적이 먼저가 아니라 찬송이 먼저입니다. 찬송으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입니다.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여호사밧왕은 모압과 암몬 족속과 싸울 때 숫적으로 불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의 종이 승리를 약속하였습니다. 그는 승리의 약속을 믿고 찬양대를 앞세우고 전쟁하러 갈 때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했습니다. 찬송이 시작되자 하나님이 당신의 군대를 동원하여 친히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 개척시에 기뻐하고 찬양할 때 하나님을 체험하였으므로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데 떡 다섯개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떡 다섯 개를 높고 많은 무리 앞에서 크게 감사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서 12광주리가 남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왔을 때는 나사로는 죽어서 냄새가 났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죽은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가 살아나오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자결하려는 간수)

 

27-28절을 보십시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는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책임감을 느껴서 자결하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간수에게 우리가 여기 있으니 자살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옥문이 열러 빨리 도망 갈 수 있었으나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도망가라고 옥문을 열어주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유를 얻는 것보다 자신을 지키는 간수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였습니다. 간수를 사랑하여 간수가 자살하는 것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보다 간수의 구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구원의 방법을 묻는 간수)

 

29,30절을 보십시오.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간수는 이런 놀라운 일을 하는 바울이 하나님처럼 보였습니다. 지신 주위에 일어난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습니다. 크고 높으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간수는 죄수인 바울에게 뛰어가서 바울을 무서워하여 떨며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죄수인 바울을 간수 앞에서 높여주셨습니다. 간수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였습니다. 이렇게 높으신 분을 가둔 자신들이 죄악된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간수는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물었습니다. 그는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대인이나 부자청년도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행위를 통하여 구원 받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주 예수를 믿는 것이 가정 구원의 길임)

 

31,32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바울은 그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십니다. 지진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주님이 쇠사슬이 벗겨지게 하고 옥문이 열리게 하셨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죄를 사하고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현실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병을 고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학과 문제, 직장 문제, 교회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가장은 가족들에게 영향력이 있습니다. 가장이 먼저 예수님을 믿으면 가족이 따라서 믿고 가족도 다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간수와 그 가족들에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간수의 가족이 하나님을 믿음)

 

33,34절을 보십시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바울 일행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주었습니다. 바울 일행을 정성껏 치료해주었습니다. 간수와 그 가족은 다 하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는 자살해서 죽을 자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죄사함을 주시고 성령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여 바울 일행을 대접하였습니다. 그와 온집이 예수님을 믿고 다 기뻐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합니다. 찬송하는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여 내가 만나는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힘써 찬양하는 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바울을 석방하려는 사람들)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날이 새자 상전들이 부하들을 보내서 바울 일행을 석방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드라마틱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에게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 받는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늘나라의 복을 쌓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바울 일행을 자유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제는 바울에게 감옥을 나가서 평안히 가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사람임을 주장하는 바울)

 

37-39저을 보십시오.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바울은 로마 사람인 자신들을 재판도 없이 감옥에 가두고 때린 것에 대해서 사과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바울은 죄수였지만 하나님의 종으로서 당당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사과를 받아서 앞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기회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상관들은 바울이 로마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여 사과하고 제발 성에서 떠나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바울은 나중에 복음화를 전하기 위해서 로마 시민을 이용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지위를 이용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루디아 가정 교회를 위로함)

 

40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상관들이 와서 사과를 하자 바울 일행은 그들을 떠나서 루디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 집에는 간수를 비롯하여 예수님을 믿은 빌립보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당시는 루디아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는 가정교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가서 교제를 나누고 빌립보를 떠났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든든히 세웠습니다.

 

(찬송할 때 성령께서 일하심)

 

바울 일행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순간에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그는 성령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핍박받으며 그의 내면에는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성령님은 그에게 찬송을 주십니다. 초대교회에도 결국 성령께서 강한 임재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창세기도 성령이 지구를 감싸며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우리 천안 땅에 성령이 충만히 임재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주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살아 있는 것. 이렇게 말씀 사역에 전무할 수 있는 것, 기도할 수 있는 것, 나의 주위에 동역자들이 있는 것, 모두가 주님의 은총입니다. 저에게 양들로 인하여 근심과 탄식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을 더욱 찬송하겠습니다. 주님의 주권과 사랑을 믿고 하나님을 찬송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16장 강해 이부 빌립보 감옥에서 성령의 역사

말씀 사도행전 1616-사도행전 1640

요절 사도행전 1625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사도행전 16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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