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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10장 강해 이방인에게 임한 성령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9-24 00:00:00
조회수 : 4,24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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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장 강해 일부 일어나 잡아먹으라

사도행전 101-사도행전 1023

요절 사도행전 1013절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안토니라는 사람은 아버지 유산을 받아 큰 부자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충격을 받습니다. 젊은 율법사가 무엇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을 지켰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다 지켰다고 하는 말을 듣고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부자는 말씀을 듣고 그는 심히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안토니는 이 말씀을 읽고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는 사막에서 삼년간 기도와 묵상과 수도로 지냈다고 합니다. 어느날 꿈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가 그대의 경건은 훌륭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구두 수선공만 못하다고 합니다. 그곳에 알렉산드리아로 길가에서 구두 수선하는 노인을 만납니다. 그는 찬송을 부르며 구두 수선을 하고 있습니다. 안토니는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하나님이 인정하는 경건에 들어갔느냐고 묻습니다. 노인은 수도생활도 않고 묵상도 안 했다고 합니다. 그는 다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구두를 수선했다고 합니다. 주인의 발을 편하게 하고 선한 길을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구두 수선한다고 합니다.

참경건은 실생활에서 기도하고 축복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경건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웰슬리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기도하는가 즐거워하는가 감사하는가 욕심을 내지 않는가 두려워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느끼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물으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로마 장군 백부장 고넬료가 나옵니다. 고넬료도 경건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경건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이방인을 향한 전도의 문을 여셨습니다.

 

(백부장 고넬료)

 

1절을 보십시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가이샤라에 고넬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이사랴는 당시 로마 총독이 주재하고 있던 본부로서 총독의 안전을 위하여 로마군의 일개 군단이 여기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달리아 부대라하는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로마군의 보병 부대 편제는 1개 군단이 500명 또는 600명 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이 군단 사령관을 천부장이라 했으며, 이를 10개 부대로 나누어 백부장의 지휘 하에 두었습니다. 이 백부장들은 로마군의 중심 세력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이 백부장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인으로서 이달리야인의 지원병들로 구성된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총독과 총독 관저를 지키기 위해서 본국인들로만 편성된 근위병(경호병)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고넬료는 신임을 받고 있던 백부장이었습니다.

한편 그의 이름은 그가 로마의 명문 출신임을 나타냅니다. 주전 82, 1만 명의 노예를 해방시킨 로마의 유명한 장군인 푸불리우스 코넬리우스 슐라의 가문입니다.

 

(경건한 고넬료)

 

2절을 보십시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그는 가정에 리더십을 갖고 온식구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신을 버리고 유대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가 이방인인 것을 볼 때 유대교로 입교하지는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경건한 삶을 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여 많이 구제하였습니다. 참경건은 사랑하는 사람이요 구제하는 사람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규칙적으로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삼시 육시 구시에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가장 맑은 정신으로 낮에 세 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넬료를 이방인의 아브라함으로 삼으셨습니다.

 

(환상을 본 고넬료)

 

3절을 보십시오.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하루는 고넬료가 제 구시 곧 오후 세시에 방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규례를 따라서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였습니다. 베드로나 요한이 하루에 세 번 기도하듯이 그도 하루에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에게 환상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환상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계시하셨습니다. 기도는 환상을 보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고넬료의 방에 들어와 고넬료야 불렀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기억하신 바 되었다)

 

4절을 보십시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하여 주여 무슨 일이나이까? 물었습니다. 천사는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와 구제를 보시고 기억하시고 상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들으십니다. 나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다 기도의 응답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이 이렇게 응답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참 좋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다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크게 아름답게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 사람 앞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도 하나님을 보고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제는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우리는 구제를 해야합니다. 우리는 머리와 함께 가슴과 돈주머니의 회심을 해야 합니다.

 

(고넬료에게 복음을 듣게 하신 하나님)

 

5,6절을 보십시오.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천사는 고넬료에게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부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시몬의 집은 해변 가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은 그에게 복음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상은 복음을 듣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배웁니다. 복음을 들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배려요, 최고의 상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어야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만나도록 하여 그의 가정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들을 천국으로 초청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를 이방인의 아브라함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도 주어지게 하셨습니다.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하셨습니다. 배타적이며 민족적인 유대교로부터 출생한 기독교가 이제는 모든 백성을 구원시키고 하나로 만드는 세계적 종교로 확산되어 갑니다.

 

(즉시 순종한 고넬료)

 

7,8절을 보십시오.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마침 베드로를 청하라고 말하던 천사가 떠나자 고넬료가 즉시 천사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세 명에게 자신이 환상을 본 것을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중에 둘을 욥바에 있는 베드로에게 보내서 베드로를 초청하게 하였습니다.

 

(환상을 본 베드로)

 

9-11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한편 하나님은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튿날 고넬료가 보낸 두 사람이 그 성에 가까이 갔을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지붕 위2층의 작은 방이나 혹은 문자 그대로 슬라브식으로 된 지붕 위를 뜻합니다. 이곳은 기도하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기도에 방해 받지 않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 가셔서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22:39) 베드로도 타인들로부터 방해받지 아니하고 기도할 수 있기 위해 이 최적의 장소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 시간은 낮 열두 시였고 점심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낮 열두시는 기도의 시간이고 베드로는 기도의 시간에 규칙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루터도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하루에 3시간씩 기도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시장하여 무엇을 먹고 싶었습니다. 아래층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음식 만드는 냄새가 솔솔 위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황홀 중에 하늘문이 열리며 하늘에서 보자기와 같은 그릇이 하나 내려왔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할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야곱도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도 기도할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황홀이란 헬라어로 엑스타시라고 했는데, 그것은 외적 감각이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중지된 채 영혼의 대화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그릇은 네 귀퉁이를 끈으로 매어 땅에 드리워졌습니다.

 

(잡아먹으라, 그럴 수 없나이다)

 

12-14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하늘에서 내려온 그 그릇 안에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다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돼지도 있고 오징어도 있고 독수리와 까치도 있었습니다. 복음의 그릇은 이방인을 포함하여 세계만민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입니다. 각종 동물은 레위기에 속되니 먹지 말라고 하신 짐승입니다.(레위기 112-27) 이 짐승은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그 속된 짐승을 잡아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잡아 먹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결코 먹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이 금지한 짐승은 먹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몇천 년 내려오는 오랜 율법 신앙이 내면화되어 있었습니다. 부정한 것을 먹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전통이요 하나의 문화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쥐를 잡아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프리카 감비아에서는 쥐를 잡아먹습니다. 속된 짐승은 이방인입니다. 유대인은 몇천 년을 내려오면서 이방인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대화할 수 없습니다.

 

(세 번 잡아먹으라하신 하나님)

 

15절을 보십시오.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깨끗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하였습니다.(딤전4:4) 하나님은 속된 것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속된 것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속되게 되심으로 이방인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을 듣고도 먹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보다 율법이 우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로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두 번째도 거절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얼마나 율법적인 사고가 깊이 뿌리 박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의식이 오랜 율법과 전통으로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 번째도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깨끗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알 때 성도들은 진리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고후3:17), 더 이상 구약의 의식적인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 있는 후에 보자기는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이 세 번 말씀하신 것은 이방인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여기서 속된 동물은 이방인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속된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들과 식사도 하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고 일도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복음 전하는 것을 잡아 먹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옮겨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복음이 유대에서 전세계로 향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찾아온 고넬로의 사람들)

 

17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속으로 의아해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절묘한 시간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문밖에 서서 불러 베드로라하는 시몬이 있는가 찾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신 정결치 않은 음식은 고넬료를 포함하는 이방인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이방인 전도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스데판 순교 후에 바울을 변화시킨 것도 이방인 전도를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방인을 보내신 예수님)

 

19,20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해서 생각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하셨습니다. 세 사람이 왔는데 그 중에 두사람이 가까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지금까지 사마리아인 전도까지는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친히 이방인을 보내서 이방인을 영접하게 하십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진두지휘하고 계십니다.

 

(복음을 듣고자 하는 고넬료)

 

21,2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 대

 

베드로가 내려가서 그 사람들을 보고 내가 베드로인데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백부장 고넬료가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유대인을 구제하고 유대 온족속 중에 칭찬을 받는 사람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계실 때 찾아와 하인의 병을 낫게한 백부장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백부장과 같습니다. 고넬료는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베드로를 청하여 복음을 듣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을 영접함)

 

2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세 사람을 불러들여서 하룻밤 잠을 자게 하였습니다.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이샤랴로 갔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속된 동물이 바로 이방인임을 알았습니다. 베드로는 잡아먹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속된 이방인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와 함께 있는 여섯 형제와 함께 갔습니다. 여섯 형제는 이방인에게 최초로 복음을 전한 이 일에 증인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이방인을 더럽다고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신 이방인을 영접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사도행전 10장 강해 일부 일어나 잡아먹으라

사도행전 101-사도행전 1023

요절 사도행전 1013절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사도행전 10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사도행전 10장 강해 이부 이방인에게 임한 성령

사도행전 1024-사도행전 1048

요절 사도행전 1044절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드디어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따라서 갑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베드로를 맞이합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 성령을 주신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고넬료에게 성령을 주신 사건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한 사건과 동일한 사건입니다. 이방인의 오순절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24,25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드디어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고넬료는 점령군 장교입니다. 어깨에는 훈장이 있습니다. 이방인입니다. 베드로는 식민지 땅의 초라한 전도자입니다. 초라한 옷을 입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입니다. 이 두 사람은 평생 안 맞났으면 좋은 사람입니다. 유대인은 정치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종교적으로는 이방인을 무시합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우월감이 있습니다. 이 두 어색한 사람이 만납니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둘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정치적인 우월감을 갖고 피지배지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두 사람이 다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고넬료도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끼리는 영으로 통합니다. 두 사람 다 천사를 만납니다. 둘 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 응답 속에서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둘 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유대인인 베드로는 이방인 로마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튿날 가이샤라의 고넬료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만납니다. 그는 모든 습관과 제도를 초월하여 고넬료를 만납니다. 이들의 만남을 통하여 기독교는 유대인의 종교가 아니라 세계만민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다 모아 복음을 듣고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베드로를 초청합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베드로를 환영하였습니다. 그는 베드로의 발앞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베드로를 주님과 같이 맞이하였습니다. 베드로 뒤에 계시는 예수님을 보며 대하였습니다.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영접합니다.

 

(겸손한 베드로)

 

26,27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베드로가 고넬료를 일으켰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요 똑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 경배하고 자신에게는 경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통하여 죽은 자가 살아나고 한번에 오천 명을 회개시키는 메시지도 전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교만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짓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넘어지면 그는 거짓된 것이요 이단의 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겸손하고 진실하고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 집에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았습니다.

 

(편견을 버리고 온 베드로)

 

28,29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베드로는 유대인으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온 이유를 말합니다. 당시의 사회적 상황은 유대인이 이방인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의 말대로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은 그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버림받은 모든 이방인과는 상대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는 음식도 같이 안 먹고 교제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유대인은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한 것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지시하사 이방인의 아무도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하다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편견을 버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자기 색깔의 신앙, 자기 교회, 자기 교단 등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신앙 태도의 편견을 버려야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방인에게 왔음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이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어 보여도 순종하여 왔습니다. 베드로는 무슨 일로 불렀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고넬료)

 

30-33절을 보십시오.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것을 사실적으로 보고 합니다. 사일 전입니다. 고넬료가 오후 3시에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고넬료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제를 기억하였습니다. 천사가 바닷가 시몬의 집에 머무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여서 베드로를 청하였다고 말합니다.

고넬료는 우리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명하신 말씀을 듣고자 모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디 앞에서 사느냐에 따라서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앞에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반항합니다.

어떤 사람은 타인 앞에 살아갑니다. 그는 타인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이들은 자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하면 죽는 줄 압니다. 기회주의적이고 허약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실리 앞에 살아갑니다. 실리중심의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나오는 것도 손익계산을 합니다. 많은 교인들을 보고 이들에게 장사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들은 나는 없고 상대도 없고 물질만 있습니다.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주님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상주심과 심판하심을 믿고 살아갑니다.

알렉산더는 귀중한 보화창고를 열고 신하들에게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자 알렉산더는 나는 나만이 아는 보물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희망이라고 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고넬료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는 이방인으로 경건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하고 기도합니다. 그는 로마 군인이라는 신분 우월감을 극복합니다. 신분 재산 지식을 털어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경건함을 찾아갑니다. 베드로를 초청합니다. 그는 화려한 훈장을 달고 초라한 갈릴리 어부한 사람을 초청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베드로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어부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대합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통해서 말씀하실 것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의 종을 통하여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로 전하는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그는 듣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먼저 할테니 말씀하라고 합니다. 요즘 교인은 십프로 말씀을 듣는 교인이 있고, 오십프로 말씀을 듣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백프로 말씀을 듣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통하여 하나님을 봅니다. 베드로의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외모를 보지 않는 하나님)

 

34,35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통하여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잘 생긴 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학벌을 보지 않습니다. 재산이 많은 것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각 나라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이방인을 속되다고 차별하였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하나님이 중심을 보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도 외모보다는 중심을 봅니다.

 

(화평의 복음)

 

36,37절을 보십시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베드로는 고넬료와 함께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평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화평하고 마음에 화평이 임합니다. 싸우던 사람들과도 화평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화평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세례를 베푼 후에 갈릴리에서 온유대에 화평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자유의 복음)

 

3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님께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이 하였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죄와 마귀에 눌려서 사는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셔서 예수님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를 구속하는 여러 가지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는 누르는 것에서 가벼워집니다.

 

(십자가의 복음)

 

39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의 나무에 달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매맞고 조롱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고 점점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의 복음)

 

40,4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음식을 먹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생선을 드심으로 영이 아니라 새로운 육으로 부활하셨음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해변에서 고기와 떡을 구워서 제자들을 대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만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부활의 예수님을 통하여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통하여 우리는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하늘에 오르사 성령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이 지금 성령으로 베드로와 함께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이 생전에 행하신 일을 베드로를 통하여 그대로 하고 계십니다.

 

(심판의 복음)

 

42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여 백성에게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셨습니다. 모든 선지자도 예수님이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신 그리스도인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으로 우리는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자를 용서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회개치 않은 자는 지옥으로 보내십니다.

 

(죄사함의 복음)

 

43절을 보십시오.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전에 죄사함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인하여 피흘리신 어린 양되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는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재판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무죄를 선고하십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와 같은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면 우리는 성령을 받고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구원의 길입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을 받은 사람들]

 

44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사형 언도문을 보면 맨 마지막에 인간임을 포기하였기에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습니다. 몸이 건강하다고 인간이 아니고 지식이 많다고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다운 인간이어야 인간입니다. 사람의 몸만 가지고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를 지배하는 이성이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도덕성에 일말의 양심이 있어야합니다. 그 이성과 감성을 주도하는 영혼이 건강하게 살아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가지고 있어야 인간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과 같습니다. 노아 홍수 전의 인간을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없어지고 육체만 남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면서 죄의식도 없습니다.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볼 때는 죽은 자를 쓸어버린 것입니다.

진정으로 영이 살아 있어야 사람입니다. 외형적인 육체는 인간의 기준이 아닙니다. 병든 양심, 타락인 이성을 가진 사람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의 구원론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성령이 임하면서 사도행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지상을 떠나야 성령을 보내십니다. 예수님이 보혜사이고 예수님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십니다. 구원의 전제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으로 오십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옵니다.

동물은 매를 가지고 때려서 다스립니다. 사람은 말로 통하여 설득하고 감동합니다. 말로 하는 것이 인간적인 관계입니다. 칼바르트는 교회학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삼중성을 말합니다.

첫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이것이 계시적인 말씀입니다. 말씀을 육신으로 보여줍니다.

둘째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셋째는 이 말씀을 읽고 선포하는 들려지는 말씀입니다. 이런 모든 말씀은 성령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오직 성령으로만이 말씀이 말씀되게 하는 것입니다. 기록되고 행동하고 선포할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고넬료와 함께 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말씀과 성령이 동시에 역사하였습니다. 말씀이 없다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말씀이, 말씀이 아닙니다. 말씀은 객관적인 계시고 성령은 주관적인 계시입니다. 이것을 받는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십니다. 성령으로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 사도행전의 구원론입니다.

고넬료와 그 일행이 말씀을 들으며 회개하고 벌써 죄사함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는 중간에 이미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들은 준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 가운데 오순절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방인인 고넬료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말씀이 있고 성령의 감동이 있고 베드로가 말씀을 전파합니다. 이렇게 하여 함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오신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영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이 말씀을 알아듣게 합니다. 말씀을 듣는 자와 하는 자 사이에 성령이 있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의 전도를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고넬료가 로마로 가서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신앙을 추상화합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신앙을 구체화합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를 통하여 하나님을 봅니다. 그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그런 신앙이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사건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건이 주님이 주시는 기도의 응답입니다. 키에로케고르는 성경은 하나님의 연애편지라고 하였습니다. 연애편지를 읽으면서 편지를 보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그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잡고 죽음을 건너는 사람이 순교자입니다.

칼바르트는 하나님은 성경 안에서 우리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에 붙잡힙니다. 내가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하나님)

 

45.4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베드로와 함께 온 유대인 신자들이 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심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이 방언은 앞서 말한 것처럼 외국어일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높이며 하나님을 높입니다. 그들은 이들에게 성령이 내리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친히 이방인을 사랑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방인 구원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에게 세례를 준 베드로)

 

47,48절을 보십시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성령 주신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먼저 성령의 세례를 주었는데 우리가 물로 세례를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갔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 전도를 먼저 하시고 다음에 베드로가 따라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을 받음으로 실제적인 천국 시민이 되었고, 세례를 받음으로 외적인 교회의 신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들과 머물며 생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행하신 행적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전한 마가복음서 하나를 공부하였습니다. 고넬료가 로마에 가서 로마에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고넬료는 로마교회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고넬료의 경건을 인정하시고 기억하십니다. 이것이 고넬료의 경건입니다.

사도행전 10장 강해 이부 이방인에게 임한 성령

사도행전 1024-사도행전 1048

요절 사도행전 1044절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사도행전 10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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