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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8장 강해 사마리아에 임한 성령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9-18 00:00:00
조회수 : 3,30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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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장 강해 사마리아에 임한 성령님

말씀 사도행전 81-사도행전 840

요절 사도행전 814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스데반의 순교 후에 성도들은 사마리아와 온 세계로 흩어집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하여 사마리아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십니다. 집사 빌립을 통하여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고 성령이 임합니다. 예루살렘에는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였고 사도들이 사마리아에는 안수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고 이방인에게는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긴 사울)

 

1절을 보십시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울은 스데판이 죽은 것을 마땅히 여겼습니다.(223,4) 그는 가말리아 문하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해외에 원정을 가서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성전을 우상시하였고 성경에서 예언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죽였다고 말하였습니다. 항상 성령을 거스린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훼방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울은 유대인들의 견해를 전적으로 동조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사울은 율법주의 사고나 성전중심 사고에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저항하지 않자 그들은 기독교인을 만만하게 보았습니다. 사도 외에는 다 유다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사도들은 책임의식을 갖고 예루살렘에 남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흩어진 평신도를 통하여 놀라운 세계선교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핍박을 통하여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선교를 이루고자 준비하셨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의 슬픔)

 

2절을 보십시오.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판을 장사하고 스데판을 위해서 크게 울었습니다. 스데판은 하늘나라로 갔지만 성도들은 돌에 맞아죽은 그로 인하여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의 순교를 통하여 사울의 변화와 놀라운 세계선교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들은 아직 스데반 순교에 두신 더 크신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부터 시작된 박해는 성도들을 더욱 경건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불신앙의 요소들을 제거시켰습니다. 고난은 그들이 세상의 욕망으로부터 유혹 받을 여지를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의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인간과 모든 기대에 대한 철저한 실망을 줌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케 했습니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의한 은혜를 누릴 권리가 있음과 동시에 그의 고난에 동참할 의무가 있습니다. 고난은 믿음에서 오는 내적 능력을 크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얼마나 자신을 든든하게 하고 평화롭게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난은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처럼 살벌한 상황은 스데반을 위하여 크게 울수 있는 경건한 유대인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교회를 잔멸하는 사울)

 

3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다고 나온 후에 사울이 두 번째로 등장합니다. 사울은 스데판의 순교를 마땅히 여길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성도를 핍박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잔멸하였습니다. 각 집에 들어가 예수 믿는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습니다. 이번 핍박은 사도뿐 아니라 성도들까지도 핍박하였습니다. 가택수색을 하여 성도의 뿌리를 뽑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 믿은 자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열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무지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였습니다. 그가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흩어진 성도들에 의해서 전해진 복음)

 

4절을 보십시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하나님은 핍박으로 성도들은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핍박의 날에 도망가라는 예수님 말씀을 순종하여 흩어졌습니다. 흩어진 자들을 통하여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흩어졌다는 것은 씨앗은 흩어지고 불씨가 흩어지는데 쓰이는 말입니다. 복음의 불씨가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사단은 교회를 핍박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위에서 성령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마치 불을 끄려고 했는데 불똥이 튀고 바람이 불어서 불이 퍼져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을 통해 제 1차 선교 지역인 예루살렘 선교의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급격한 교회의 부흥이 안고 있는 내적 위험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그들을 제 2차 선교 지역인 사마리아와 이방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박해가 결코 그리스도의 교회를 잔멸할 수가 없습니다.(3) 오히려 그것은 선교의 동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핍박을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은 핍박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 선교의 원리는 그 이후 그리스도 교회 2천 년 역사에서 계속 증명되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자는 핍박 자체가 그대로 선교의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들은 그들 속에 내적으로 역사하시는 생명력이 가득차 결코 그대로 있을 수 없는 선교의 열정을 갖습니다. 그 열정은 죽음의 위험을 극복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30, 60, 100배로 증식하는 생명력을 행사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영적 생명의 완성을 하고, 완성된 생명은 생명 자체의 원리에 따라 분열 증식합니다. 생명의 자기 확대, 이것은 생명의 위대한 원리입니다. 선교는 실로 이 생명의 원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박해는 이 생명의 원리를 촉진시킵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는 빌립)

 

5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성도들이 흩어질 때 빌립은 사마리아로 흩어졌습니다.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였습니다. 빌립은 헬라식 이름입니다. 그의 마음도 세계를 향한 열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후에 헬라어로 이디오피아 내시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였는데 사도들은 이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빌립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평신도인 빌립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빌립을 통해서 사마리아 전도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핍박하는 악도 선으로 바꾸십니다.

실상 사마리아인들은 같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유대교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우상을 숭배하고 이민족과 혼합했다는 이유로 멸시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런 것들을 장애 요인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음에는 인종도 종교도 국경도 민족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복음을 통한 구원이 필요합니다.

 

(강력한 성령의 임재하심)

 

6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하나님은 사마리아 전도를 기쁘시게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빌립과 함께 하셔서 표적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있었습니다. 이 일을 하나남이 기뻐하신다는 표시입니다.

무리들은 빌립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빌립이 하는 말을 따랐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한 마음으로 그 복음을 수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유대교가 배척하고 내버렸던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셨으며,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4:5-42) 사마리아사람들도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4:25). 유대교가 이방인에 대하여 구원의 문을 닫아 놓고 있을 때, 복음은 만민에게 생명의 문을 무제한적으로 개방하였습니다.(16:15).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유대인들과 화해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과 한마음이 되는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복음 안에는 화해와 일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

 

7,8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지르며 떠났습니다.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던 사람이 나았습니다. 빌립이 전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자체였습니다.(5), 예수님이 생전에 하신일을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귀신들을 제압하고 난치병을 고치며 불구자의 육체를 온전케 했습니다.

복음은 병든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다 구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리적인 위로의 말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자체가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부활의 복음에 대한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적은 생명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갖게 하고 또 그들의 심령 속에 큰 기쁨을 안겨 줍니다.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기쁨을 주지 못하는 진리는 아무리 찬란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시몬의 거짓 마술과도 같이 무익한 것입니다. 누가는 복음의 치유 능력을 힘입은 인생들의 반응을 항상 기쁨으로 표현했습니다(24:52 6:5). 의원다운 관찰과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접하는 자에게 해방의 기쁨, 안식의 기쁨, 소망의 기쁨, 진리 가운데 속한 기쁨을 영원히 제공합니다. 다만 그 믿음의 분량과 성숙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세계 선교 명령에 순종하자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마술사 시몬을 따르는 사마리아 사람들)

 

9-11절을 보십시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사마리아 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부터 마술을 행하며 사마리아 사람에게 놀라게하였습니다. 자칭 큰 자라고 하였습니다. 낮은 사람에서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시몬을 따랐습니다. 사람들은 시몬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사단의 능력을 행하는 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시몬이 행하는 마술에 놀랐으므로 시몬을 따랐습니다. 시몬은 마술을 통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이집트 마술사들이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고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한 것 같은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후에 이단의 괴수가 되어 바울과 베드로의 선교를 방해하고, 초대 기독교 성도들을 허다히 미혹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름에서 유래된 시모니라는 말은 오늘날도 사이비 성직 매매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시몬은 초대 교회의 가장 큰 이단 중의 한파였던 영지주의 사상의 창시자라고 합니다.

영지주의는 동방의 페르샤 종교와 서양의 철학이 혼합된 종교 철학으로써 후에 기독교의 구원론과 합해져서 영혼의 구원만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높고 고상한 영적 지식을 소유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세계와 교제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육적으로 부도덕하였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혼혈 유대인이며, 또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4:20), 그와 같이 한 인간의 교묘한 종교 철학에 미혹받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또한 고대 세계에 성행했던 일종의 마술 기법까지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상과 함께 온갖 마술 기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자신의 종으로 삼았습니다(11).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마술사 후디니라는 사람은 몇십 년 동안 마술을 행하여 세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후에 고백하기를 마술은 결국 사람을 얼마나 속이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좌우된다고 했습니다. 마술은 곧 속임수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외의 능력에는 진실성과 영원성이 결여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인본적 율법주의도, 시몬의 마술도, 헬라인의 고상한 철학 사상도 그점에 있어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진리의 그림자를 모방한 것뿐입니다.

의원 누가는 복음과 단절되었던 사마리아 사람들을 마치 마술사의 독침에 마취된 무지한 환자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은 자신을 자칭 큰 자(9)라고 여겼는데, 고대 교부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하나님을 비방하고 자신을 신들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고 합니다. 또 사마리아인들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그를 하나님(10)처럼 받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면한 세계는 결국 악마의 지배를 받아 온갖 교만과 무지의 죄악의 종 노릇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살후2:9,10). 여하튼 이렇게 추악한 한 인물의 지배를 받던 사마리아가 드디어 빌립의 복음 전도에 의해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나라와 예수를 전하는 빌립)

 

12,13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하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빌립 집사가 전한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얻는 죄사함(12)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남녀가 다 세레를 받았습니다.

인생들에게는 영생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3:11). 복음은 영생의 실체이기에 복음을 깨달은 이들은 누구나 복음에 순종합니다. 시몬의 인본 종교와 마술은 공포심으로 잠시 주민들을 복종시켰으나 진리는 스스로 순종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복음에 바로 서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만 하면 이웃을 복음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놀랐습니다.

 

(말씀을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

 

14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여로보암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운 후 사마리아는 우상 숭배의 도성이 되었으며 B.C.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된 후로는 혈통과 종교에 있어서 순수한 유대인을 되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냉대를 받았으며 따라서 성품도 매우 거칠어지고 말았습니다(9:52,53 4:9).

그런데 그러한 그들의 성향이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방문하신 때부터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빌립의 전도에 의해서 분명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함을 들었습니다.

16절에서는 구체적으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았습니다. 사마리아인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구원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보내서 사마리아 전도를 도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간 것은 성령, 즉 신령한 은사를 나눠(1:11)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과거의 요한을 보면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주는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독점욕이 매우 강해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 형제 야고보와 함께 와서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청했던 자입니다(20:21). 그는 제자들간에 경쟁과 질투심을 유발시켰던 자입니다(24). 그런데 그러한 자가 이제는 가장 좋은 것을 함께 나누는 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내려간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을 받게 함으로써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할 자신들의 사명의 일부를 그들에게 위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과거의 영적 교만의 상태에서(9:54) 겸손해졌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

 

15,1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그들은 이미 빌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 중에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을 내리신 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들의 권위를 위하여 그들에게 성령주시는 일을 유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지만 성령의 임재는 없는 과도기적인 현상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사마리아 땅의 천국 문을 여는 열쇠를 맡겨 주셨습니다.

 

(사마리아에 임한 성령)

 

17절을 보십시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에게 가서 다시 한번 죄사함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곳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교회의 기초로 삼으셔서 베드로를 통하여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도적 권위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구원뿐만 아니라 천사도 흠모할 만한 복음 전파의 사역을 주셨습니다.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한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에 의한 복음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땅에 오순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 중에서는 고넬료에게 처음 성령 받게 하셨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성령 강림은 이방인에게 있었던 오순절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사마리아에도 성령의 임재하심과 내주하심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신 베드로를 통하여 세계선교의 문을 열고 계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당시에 유대인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 교회를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 아래 두셨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사마리아 교회가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이방인 가운데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우신 종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를 이루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성령을 돈주고 사고자하는 시몬)

 

18,19절을 보십시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은 기도할 때(1:14 2:1-4 8:15), 안수받을 때(18, 19:6,7), 말씀을 들을 때(10:44-47) 충만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을 때 임합니다. 초대 교회에 있어서 성령 충만의 체험은 대개 방언과 예언을 동반했습니다(2:4 10:46 19:6).

시몬은 돈을 주며 자신도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성령 세례를 주는 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과거 마술로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이제 마술보다 뛰어난 성령을 받아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자신을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시몬은 내게도 이런 권능을 주어 누구든지 자신이 안수하는 자는 성령을 받게 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을 돈주고 사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마술사 시몬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영적인 현상은 집사 빌립이 행한 기적과 함께 굉장한 매력으로 보였으므로 그는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성령을 받게 하여 더 많은 돈벌이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무지한 가운데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

 

20,21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베드로는 그를 엄히 책망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마술처럼 돈을 주고 사고자 한 것을 책망하였습니다.

마술과 성령에 의한 기적은 전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마술은 돈받고 행하는 것인데 비하여 성령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는 선물입니다. 마술이 자연의 세력을 이용하는 데 비하여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입니다. 마술은 자기의 의도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데 비하여 성령은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뜻이 자기를 통하여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시몬이 돈과 함께 망할 자라고 심히 책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은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우리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돈을 벌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치고 깨끗하게 돈을 거절한 것 같은 순수한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하나님의 선물과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하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성령의 주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동산이나, 육적인 것, 명예와 권력 같은 것은 어느 정도 돈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죄사함의 은혜, 성령의 은사 같은 것과 사랑, 행복, 건강, 인격 등은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야말로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입니다.

베드로는 시몬이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복음에 대해서 관계도 없고 분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시몬은 이기심과 탐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도 오늘날 마술사 시몬과 같이 기독교 진리, 또는 신앙 생활을 자기의 세속적인 이권에 결부시켜 신성한 교회를 더럽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나 장로들 가운데 자기를 높이려 하는 자, 신학박사나 목사나 장로나 권사와 같은 성직을 돈 주고 파는 자, 이권 때문에 피나는 분쟁을 하는 자들은 모두 이 마술사 시몬의 후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악함을 회개하라)

 

22,2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베드로는 그가 돈으로 성령을 사고자 한 악한 것을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회개하지 아니하고 형식적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13).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은 생명만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가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혹시 사하여 주실 수 있고 망하지 않게 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바울은 그가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한 돈에 매인 것을 책망하였습니다.

우리는 성령이나 성령님이 주는 은사를 돈주고 사고자하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헌금 많이 한다고 성령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야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너무 비싸므로 가격으로 칠 수 없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시몬)

 

24절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시몬은 자신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한 것을 회개하엿습니다. 그는 베드로가 말한 것이 하나도 자신에게 임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그는 진실 되게 회개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로 돌아가는 두 사도)

 

25절을 보십시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두 사도가 성령이 임한 그들에게 주의 말씀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들이 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더 자세히 전하였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여러 마을에 복음을 전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는 빌립]

 

26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요한과 야고보가 돌아간 후입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길은 광야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가는 도로입니다. 하나님은 특수한 상황에서 직접 말씀을 주시고 방향을 지시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인도된 빌립)

 

27,28절을 보십시오.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빌립은 주의 사자의 방향을 들었습니다. 빌립은 일어나서 광야로 순종하여 갔습니다.

다메섹에서 사울의 회심을 몰랐던 아나니아가 성령의 이상스러운 지시를 즉각 순종하지 못하고 반문하였습니다.(9:13,14) 빌립도 아나니아처럼 왜 그리로 보내느냐고 반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도의 대상이 없는 곳으로 가라는 성령의 지시는 빌립을 대단히 맥빠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빌립은 성령의 지시에 반문하지 않고 기꺼이 순종하였습니다.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이디오피아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유대 교회에서는 그와 같은 이방 사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10:2)라고 불렀습니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는 여왕의 모든 국고를 맡은 권세 있는 자였습니다. 재정부장관에 해당합니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처럼 자신의 부와 권세 때문에 말씀을 멸시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수레에서도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비록 구약의 율법을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율법이 요구하는 예배의 행위를 위해 먼 예루살렘까지 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53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70안역 헬라어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내시는 지도하는 자가 없는 외로운 가운데서도 말씀을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은 빌립)

 

29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

 

아까는 주의 사자가 말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성령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친히 구원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성령은 빌립에게 인격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특별한 순간에 성령은 빌립이나 바울이나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빌립에게 이 수레에 가까이 가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택한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이 성령의 지시를 따라서 사는 빌립을 통하여 이방인인 이디오피아 내시를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성경 선생의 필요성)

 

30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빌립이 성령의 방향에 즉시 순종하여 내시에게 달려갔습니다. 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고 물었습니다.

간다게 여왕의 내시는 권세와 부를 가진 사람이었으나 결코 오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면서 빌립을 청하여 기꺼이 도움받기를 원했습니다. 내시의 이러한 자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권고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시는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스스로 깨달아 알기 어렵습니다. 복음을 이해한 성경 선생이 가르쳐주어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복음을 깨달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르쳐주어야합니다.

 

(십자가의 말씀을 읽은 내시)

 

32,33절을 보십시오.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내시가 읽은 성경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이 십자가에 끌려갔습니다. 털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과 같이 조용히 하고 입을 열지 않고 말없이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굴욕을 당했을 때도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아무 죄없이 십자가의 중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명이 빼앗겼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그의 세대의 악함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한 빌립)

 

34,35절을 보십시오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그 내시가 빌립에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그는 누구를 가르키는가 물었습니다. 선지자 자신인가 다른 사람인가 물었습니다. 내시는 그가 누구를 가르치는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빌립은 그 사람은 선지자가 아닌 바로 예수님을 의미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말없이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아무 죄없는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마땅히 형벌 받을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내시는 빌립과 성경 공부를 하고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서 죽은 것을 믿었습니다.

 

(내시에게 세례를 준 빌립)

 

36-38절을 보십시오.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길 가다가 물이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는 물이 있는 곳에서 세례를 받고자 하였습니다. 빌립은 내시를 데리고 물이 있는 곳으로 가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빌립은 평신도이지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복음을 믿은 그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복음을 영접하는 자는 원칙적으로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내시는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의 영에 이끌림을 받는 빌립)

 

39,40절을 보십시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둘이 물에서 올라왔습니다.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고 갔습니다. 휴거를 당하는 사람처럼 빌립을 이끌고 갔습니다. 성령은 빌립을 인도하였고 빌립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내시는 빌립을 볼 수 없었지만 기쁘게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그는 내시고 재정부 장관으로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에수님을 만나고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후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라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자유함이 있었습니다. 빌립의 딸들은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강해 사마리아에 임한 성령님

말씀 사도행전 81-사도행전 840

요절 사도행전 814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사도행전 8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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