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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3장 강해 일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7-03 00:00:00
조회수 : 2,555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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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장 강해 1부 나사렛 에수 그리스도의 권세

말씀 사도행전 31-사도행전 310

요절 사도행전 3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많은 사람이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돈을 대박으로 버는 것이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돈을 주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지금 두레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김진홍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분이 가난한 사람들 선교를 많이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넝마를 하여 모은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도와주지 않으면 오히려 원망을 했습니다.

김목사는 이제 돈을 주지 않고 자립하도록 리아카를 사주었더니 리아카를 팔어 먹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는 이런 실패를 통해서 이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 돈이 아니라 바로 살아계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예수님을 믿도록 돕는 것입니다. 내가 소유한 예수님, 내가 만난 예수님을 주어야합니다. 자녀들에게 물려줄 유산도 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도 돈을 요구하기보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배워야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진정한 재산이요 돈보다 좋은 예수님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하는 사도들)

 

1절을 보십시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오후 세시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시간이 되자 만사를 제치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에게 기도는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은 후에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는 스스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라고 해도 졸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 그들은 자발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절대적으로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전 9, 오후 3, 해가 질 때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성령님께서 기도의 강한 소원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을 마음에 받자 베드로는 요한이 새롭게 보였고 요한은 베드로가 귀하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손을 꼭 잡고 함께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사랑하고 말씀을 보고 기도하면 그들은 더욱 성령님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성령님을 받은 후에 기도는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면 기도하지 않으면 그 안에 계신 성령님이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걸고 절대적인 기도를 할 때 성령님께서 강력으로 일하십니다.

 

(나면서 앉은뱅이이 된 자)

 

2절을 보십시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지라"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422절을 볼 때 그는 40살 정도의 나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들것에 메고 와서 성전 앞 미문에 놓았습니다. 그는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를 하모니카로 부르면서 사람들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그의 옷은 초라하고 꾀죄죄했습니다. 얼굴은 씻지 않아서 지저분했습니다. 파리떼들이 윙윙 그의 주위를 날아다녔습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입니다 그의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모두가 앉은뱅이고 앉은뱅이로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은 서서 걸어 다니고, 자기만 앉은뱅이인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한 대 때리고 도망가도 그냥 앉아서 당해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키가 커서 그를 내려다 보는데 그는 앉아서 올려다 보아야 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그를 그렇게 나아주신 부모님을 원망하고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자살을 생각해보지도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모진 목숨 끊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는 이제 앉은뱅이 처지에 적응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이제 가능한 한 슬프게 보여서 다른 사람의 동정심을 얻는 것이 생존전략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도움과 동정을 받아야했습니다. 그는 벌써 불혹의 나이인 40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도와 줄 수 있는 것은 그를 들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성전 앞에 두는 것입니다. 그는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곧 미문에 앉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에게 한두 푼 적선하였습니다. 그는 오늘도 성전 앞 미문 앞으로 출근하였습니다.

 

(돈을 원하는 앉은뱅이)

 

3절을 보십시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자 오늘도 가능한 한 슬픈 얼굴로 소리쳤습니다. "한 푼 도와주세요! 아침도 못 먹었어요-.“ 그는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푹 숙이며 동전 통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하나님의 종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구하듯이 베드로에게도 돈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돈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옷도 사고 집에서 난방도 할 수 있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병원도 갈 수 있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돈이 필요했고 그는 돈을 구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이번에 장막방 장판을 새로 하였습니다. 하고보니 도배도 새로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돈이 들어갑니다.

베드로는 돈을 구걸하는 이 앉은뱅이 거지를 보았습니다. 과거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부터 소경을 보고 누구의 죄인가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죄인가 아니면 부모의 죄인가 물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보라)

 

4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은 그에게 "우리를 보라"고 동시에 외쳤습니다. 그들은 이제 우리를 보라고 하자. 하나 둘 셋!’하고 외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동시에 외쳤습니다. 이는 그들이 성령님 안에서 얼마나 하나가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보라고 외친 것은 바로 성령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거지에게 외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당당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를 보라고 외쳤을까요? 이는 앉은배이에게 영적인 소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병자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삼십팔년된 병자를 고치기 전에 먼저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이는 낫고자 하는 소원이 있을 때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있었는데 그는 열심히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그의 마음에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눈을 보고 그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네 발로 일어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일어섰습니다.

하나님은 치료하기 전에 먼저 믿음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주의 종의 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소원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그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거지의 강한 소원)

 

5을 보십시오.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거지는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보라고 하자 오만원짜리 돈이라도 주려고 하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는 큰 기대를 갖고 눈을 반짝이며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

당시에 제사장이나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돈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헌물로 이들을 지원했습니다. 이들은 돈으로 가난한 자들도 도울 수 있었습니다.

거지는 베드로와 요한이 종교지도자와 같이 돈이 많은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거지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불타는 소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불타는 강한 소원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뜨거운 소원을 가져야합니다.

 

(내가 가진 예수의 이름)

 

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베드로와 요한은 거지에게 줄 돈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도 과거에 돈이 있었지만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요한은 집에 삯군을 둘만큼 부요했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 더 많은 돈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 많은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돈은 주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돈이 없어서 돈으로 앉은뱅이를 도울 수는 없었습니다. 과거에 베드로라면 돈이 없는 것을 탓하고 무기력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베드로에게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믿음으로 성령 충만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지금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 그리스도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입니다. 만물을 복종시키시는 능력의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오순절날 성령님이 베드로와 요한의 마음 속에 충만히 임하셨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기도함으로 성령충만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 충만한 것을 가리켜 우리가 예수님 이름을 소유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들 마음 안에서 살아계신 성령님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앉은뱅이를 일으킬 것이라는 소원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소유할 이름 예수)

 

많은 사람들이 소유에 대해서 관심을 갖습니다. 지식을 소유하고, 좋은 대학졸업장을 소유하고, 좋은 차, 좋은 집을 소유합니다. 좋은 사람을 배우자로 소유하고자 합니다. 좋은 직장, 좋은 직위를 소유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돈과 명예와 사랑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좋게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가치 있는 것들입니다. 특히 사람들은 돈을 소유하고자 합니다. 돈이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돈보다 더 가치 있고 좋으신 분이 있습니다. 돈보다 휠씬 좋으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화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예수님을 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가족과 직장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미국의 김이삭 선교사님은 검사 자리를 버리고, 안요셉 선교사님은 대사 진급을 앞두고 공사를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전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예수 그 이름은 가장 귀한 이름입니다. 가장 좋으신 이름입니다.

그러나 중세 시대 교회에는 돈은 있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도 돈보다 더 좋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소유해야합니다. 예수님이 왜 그렇게 좋으신 분일까요?

 

(영생을 주시는 예수)

 

첫째, 부활하신 예수님께는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할 때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마음에는 기쁨과 평화와 자유와 행복이 임합니다. 주위환경은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예수님 때문에 내면에 천국이 임합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우리의 천국은 더 넓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소유할 때 우리는 거룩한 소원이 생깁니다.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지옥불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집니다.

 

(권능의 예수)

 

둘째, 예수님 안에는 그 외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권세도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이 있습니다. 죄사함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켜주십니다. 사망권세를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수님 안에는 돈도 있고 사랑도 있고 명예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음으로 그 이름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소유하였을 때 어부였지만 능력 있는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소유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동일하신 예수의 이름)

 

7,8을 보십시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예수님의 이름을 앉은뱅이가 믿었을 때 그는 발과 발목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뛰어 서서 걸으며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앉은뱅이가 성전에 들어갈 수 있게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기하여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앗싸! 할렐루야! 이것이 그가 지르는 감탄의 말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생명은 권세가 있습니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살아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살아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그 예수님이 성령으로 지금 베드로의 마음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하십니다.

베드로 속에 들어오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실 때와 동일하게 일을 하셨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전에는 한 분 예수님만 계셨다면 이제는 예수님이 예수님을 영접한 여러 사람의 마음 속에 동시에 성령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동시다발적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초대교회서만 일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소유했다고 모든 앉은뱅이를 고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을 소유할 때 변화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과 긍휼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안에서 자립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면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갈 때 마치 바람이 부는 것처럼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직장에, 가정에, 학교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이런 예수님의 이름 소유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요?

 

(예수를 믿는 일)

 

첫째, 믿음의 투쟁을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315,16절을 보십시오.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이 사람이 완전히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을 고칠 때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혈루병 환자를 고칠 때도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살아계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근본적으로 불신의 덩어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회개하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하신 그 이름 예수님을 온전히 믿어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높여 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산을 바다에 던지라고 해도 바다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일)

 

둘째, 베드로와 요한은 이 큰 일을 하기 전에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려면 말씀을 보고 기도해야합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냈지만 제자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비법을 전수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소유한 능력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예수님을 소유한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많은 병자들을 치료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조목사님은 처음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해서 삼일동안 기도하였습니다. 혼자서 안 되어 장모님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기도했을 때 그 병자에게 낫고자 하는 믿음이 생겼고 조금씩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다가 병을 고친 것입니다.

 

(놀라운 예수님의 역사)

 

9,10절을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사람들은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을 보며 놀랐습니다. 이들이 놀란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앉은뱅이가 나은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놀랐습니다.

둘째는 베드로의 변화입니다. 베드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던 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무서워 문을 걸고 숨어 있던 자들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유창하게 말씀을 전하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베드로를 변화시키신 분은 분명히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그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십니다.

베드로의 변화는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유할 때 베드로처럼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소망을 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도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리고 사람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유할 이름 예수)

 

결론적으로 양들이 주의 종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양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양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목자가 양들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위로와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성령님을 믿고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소유해야합니다. 그때 새 생명의 역사가 힘있게 일어날 줄을 믿습니다. 아멘!

사도행전 3장 강해 1부 나사렛 에수 그리스도의 권세

말씀 사도행전 31-사도행전 310

요절 사도행전 3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사도행전 3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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