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4장 강해 일부 유일한 구원자 그 이름 예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10-06 00:00:00
조회수 : 2,583

문제지풀이(2)

    iconB_05449A.hwp  (24.50KB)

    icon2.hwp  (16.00KB)

사도행전 4장 강해 일부 유일한 구원자 그 이름 예수

말씀 사도행전 41-사도행전 422

요절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베드로와 요한이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고친 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동시에 사도들에게 종교지도자들의 핍박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핍박을 이기고 계속하여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구원자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러자 아름다운 초대교회는 점점 성장해갔습니다.

 

(부활 증거를 싫어하는 사두개인)

 

1-2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많은 사람들이 일어난 앉은뱅이를 보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자 몰려왔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은 베드로나 요한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신 일임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찾아아 사도들을 핍박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가야바고 그 장인이 안나스입니다. 이들은 공권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도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사도들에게 몰려가자 시기심이 발동하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예수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였습니다. 부활을 인정하면 그들의 죄악됨이 드러냅니다. 사단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증거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때 성령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을 가둔 사두개인)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이 부활을 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사도들의 첫투옥 사건입니다. 날이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어두었다가 재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교권을 이용하여 사도들을 감옥에 가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가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둘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메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메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오천명)

 

4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막을 수 있었지만 성령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성령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는데 이 강물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앉은뱅이가 나은 후에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은 자가 많았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 믿은 자가 남자의 수만 오천이나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에 남자만 삼천 명이 회개하였습니다. 앉은뱅이를 통하여 부활의 능력이 나타난 것을 보고 오천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을 보면 남자만 지금까지 만 명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남자 인구가 오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인구의 오분의 일 가량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공회에서 재판)

 

5,6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둔 이튿날 날이 밝자 공회에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산헤드린 공회를 열었습니다. 가야바의 장인 대제사장 안나스와 대제사장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였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는 번갈아 가며 대제사장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사형을 내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여서 베드로와 요한이 부활 설교를 한 것을 재판하고자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이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하였느냐)

 

7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사도들을 공회 가운데 세우고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고치고 부활의 말씀을 전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성전을 맡은 자요 하나님이 권세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왜 우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왜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고 앉은뱅이를 고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 허락을 받고 이 일을 성전에서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자격증과 같은 그들이 가진 세상적인 권위가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깨끗게 할 때도 그들은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로 그 일을 했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담대한 베드로)

 

8,9절을 보십시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재판을 받는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핍박을 받자 더욱 성령이 충만해졌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자 담대해졌습니다. 속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졌습니다.

베드로는 전에 공회 문 앞에서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공회 한 복판에서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19,20절에서 제자들이 공회에 끌려가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하실 말씀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증거할 말씀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어떤 자격을 갖고 이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질문을 누구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쳤는가 로 해석하여 대답하였습니다. 그 옆에는 앉은뱅이에서 나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친 것은 하나의 팩트였습니다. 베드로는 핍박을 재판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부활의 산증인인 고침받은 앉은뱅이를 통하여 그들에게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찼습니다.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10절을 보십시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베드로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마음 속에 있는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베드로는 종교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분명히 알라고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것은 맞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죽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만왕의 왕을 죽이는 큰 죄를 범하였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바로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가 살아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지금 살아있는 왕입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그들이 죽였으나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옆에 있는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세가 바로 이 사람을 낫게 한 것이라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실적으로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은 나은 이 사람을 보고 회개하고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모퉁이의 머릿돌 예수님 이름으로)

 

11절을 보십시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이 말씀은 시편 11822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자신을 모퉁이의 머릿돌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때 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야에 대해서 연구하는 건축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가 아니라고 버렸습니다. 그들은 고난의 메시야를 생각지 않고 영광의 메시야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죄문제를 해결하는 영적인 메시야를 생각지 않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야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아니라고 에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았습니다. 머릿돌은 중심이 되는 돌이요 기초가 되는 돌입니다. 앞으로 건축할 방향이 되는 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세상의 집을 다시 짓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 되십니다. 교회의 중심이 되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 중심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들의 그리스도요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세상 만민의 그리스도요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왕의 왕이시오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되어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키셨습니다. 머릿돌 되신 예수님을 영접지 않으면 이 돌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죽을 것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

 

12절을 보십시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많은 사람이 다원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슨 종교를 믿어도 가는 목적지는 같다고 말합니다. 수녀와 승려가 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찬불가를 부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에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세상만민에게 구원을 주시는 이름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디모데전서 25절에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어떤 자도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무 죄없는 예수님만이 죄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만이 죄사함을 주실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아무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자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영원히 살아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활하여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만이 구원을 주시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오직 그 이름 예수님만이 구원의 이름입니다. 우리를 치료하시고 자유케 하시고 변화시키는 이름, 참 안식을 주시는 이름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지옥 불에서 건져내어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새로운 몸으로 부활시키사 상함도 슬픔도 죽음도 없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당시는 건물도 없었고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권세가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도 돈이 아닙니다. 건물이나 사람이 아닙니다. 교수도 아닙니다. ubf의 이름도 아닙니다. 오직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만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비난할 말이 없는 사두개인들)

 

13,1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과거 베드로는 두려움의 사람이었습니다. 지식이 짧은 사람입니다. 무식자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에 담대하게 용기가 생겼습니다. 지혜롭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무식자가 유식하게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본래 배우지 못한 평범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유창하게 전하자 놀랍게 여겼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전한 말씀은 성령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주신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대적자에게 말을 할 때 할 말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그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주위에는 앉은뱅이 병나은 사람도 함께 서서 베드로와 요한의 말이 진실임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은 분명한 증거인 나은 앉은뱅이 앞에서 비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전하는 그리스도요 왕이신 예수님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부활의 증거)

 

15,16절을 보십시오.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명하여 공회에서 잠간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베드로와 요한을 어떻게 할까 의논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통하여 유명한 표적 곧 앉은뱅이가 일어나 앉은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을 하신 분이 베드로의 말대로 그리스도임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도 살아나신 예수님을 사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실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17,18절을 보십시오.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사두개인들이 베드로의 말을 인정한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죽인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인정해야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만 병나은 사실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퍼져나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퍼져나가면 예수님을 죽인 그들의 죄에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들이 백성들 앞에서 사과하고 처벌을 받아야합니다. 그들은 죄에 대해서 책임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면 과거의 잘못은 용서하겠다고 타협안을 제안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 경고하였습니다. 도무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 초범은 경고하여 풀어주었습니다. 두 번째 잡혔을 때는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때립니다. 사단이 하는 일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하고 예수님이 왕인 것을 부정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자하는 베드로의 결단)

 

19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번 스스로 판단해보라고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신앙을 가지란 말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인본주의자였습니다. 그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살라고 충고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중에 어느것이 옳으냐 하나님 앞에서 판단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지도자들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들어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때는 그들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는 종교지도자의 말을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전하라 하시는데 말씀을 전하지 말라는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온 맘과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베드로의 변화된 삶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부활의 주님에 대한 증인의 삶을 살고자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그들 속에 계시는 성령님이 예수님을 증언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는 다시 잡혀 와서 매를 맞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자신의 소신을 말하였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예수님을 증거합나다. 핍박이 있어도 자신이 아는 한 가지 예수님이 자신을 변화시킨 사실을 기초로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예레미아 209절에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불이 붙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성령의 불이 우리의 마음에 붙으면 우리는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백성을 두려워하는 사두개인)

 

21,22절을 보십시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모든 사람들이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백성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지지하였습니다. 이 표적으로 병이 나은 사람은 사십살 정도 되었습니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진리가 없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정치가였습니다. 예수님이 인기가 있자 예수님을 처치하지 못하던 사람들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종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다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면 그들에게 매를 때리겠다고 위협하여 그들을 놓아주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강해 일부 유일한 구원자 그 이름 예수

말씀 사도행전 41-사도행전 422

요절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14 [사도행전] 사도행전 8장 강해 사마리아에 임한 성령님 오요한 2008-09-18
13 [사도행전] 사도행전 7장 강해 스데반 설교 오요한 2008-09-18
12 [사도행전] 사도행전 6장 강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한 사도들 오요한 2008-09-11
11 [사도행전] 사도행전 5장 강해 이부 예수처럼 고난받음을 기뻐하는 사도들 오요한 2008-09-11
10 [사도행전] 사도행전 5장 강해 일부 진실하신 성령을 경외하자 오요한 2008-09-11
9 [사도행전] 사도행전 4장 강해 이부 성령이 체제를 바꾼다 오요한 2008-09-08
8 [사도행전] 사도행전 4장 강해 일부 유일한 구원자 그 이름 예수 오요한 2007-10-06
7 [사도행전] 사도행전 3장 강해 이부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 오요한 2007-04-01
6 [사도행전] 사도행전 3장 강해 일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 오요한 2005-07-03
5 [사도행전] 사도행전 2장 강해 삼부 성령께서 만드신 예루살렘 교회 오요한 2005-07-03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