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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16장 강해 이삼부1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11-29 00:00:00
조회수 : 2,91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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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장 강해 2부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말씀 요한복음 16장 16-요한복음 16장 27
요절 요한복음 16장 24절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잠시 슬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으로 오심으로 그들은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그들은 성령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음으로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고통은 잠시다)

16-19절을 보십시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본문에는 ‘조금 있으면’ 이라는 말이 7번 반복됩니다.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조금 있으면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조금 있으면 이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이라는 뜻을 설명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하루 후에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삼일 후에 부활하십니다. 제자들이 삼일 후에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조금 있으면 40일 후에 승천하여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열흘 후에 오순절 날 성령으로 오셔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은 잠간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영광은 영원합니다.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슬픔이 있고 근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잠간 동안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조금 후에 성령님을 통하여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내가 받는 고통이 조금 동안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요 은총은 영원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은 잠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병으로 고통합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성장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잠시 동안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는 넉넉히 참을 수 있습니다. 고난은 조금 있으면 다 지나갑니다. 욥이 자식을 잃고 재산을 잃고 건강을 잃었습니다. 완전히 패닉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잠시 후에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IMF의 경제 위기 때 많은 사람이 자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경제 위기가 잠시라는 것을 알았다면 자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잠시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저는 지난 주 어금니를 하나 뺐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잠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 고통이 영원히 지속된다고 생각하면 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근심이 기쁨으로)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를 회개하라고 책망하여 속이 시끄러웠는데 예수님이 죽어서 속이 시원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곡하고 애통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역전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근심하겠으나 도리어 근심이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면에 기뻐하던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슬퍼하고 고통할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과 같다)

21,22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근심은 해산하는 여인이 받는 고통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여자가 해산하면 그 때가 이르러서 근심합니다. 해산할 때 고통합니다.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은 잠시입니다. 길어야 하루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이 의미 있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잠시의 고통 후에 평생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여자는 잠시 후에 고통이 끝나고 아기가 태어납니다. 아기를 만나는 기쁨은 평생의 기쁨입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아기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해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이 둘째나 셋째를 낳고 다섯까지 낳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니 제자들은 근심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잠시입니다. 십자가는 의미 있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잠시 겪지만 부활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만민을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여 성령으로 다시 오십니다. 성령님은 새로 태어나는 아이와 같습니다. 제자들은 성령님을 맞이하는 기쁨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기쁨입니다. 세상이 제자들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은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가고자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하여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기쁨을 주시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더 크신 분이십니다.

(두 가지 근심)

근심에는 두 종류가 았습니다. 세상 근심이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을 보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세상 근심은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겪는 근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근심이 있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도 근심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합니다. 동족인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한 것으로 근심이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의 양들로 인하여 마음이 눌린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근심을 통하여 많은 양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근심이 있습니다. 양들의 죄로 인하여 근심합니다. 불신에 빠진 양들을 위하여 근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면 우리는 근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의 근심이 무익한 것이 아닙니다.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이 유익한 것입니다. 저도 문제 있는 양들을 생각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이루실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생각할 때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이루실 성령의 역사, 생명의 역사를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빼앗기지 않는 기쁨)

예수님은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근심을 빼앗고자 하는 자는 사단입니다. 눈에 보이는 여러 가지 일을 통하여 근심을 빼앗고자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단보다 더욱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받으리니 기쁨이 충만하리라)

23,24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날은 성령이 오시는 날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제자들은 더 이상 예수님게 묻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기도를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으로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합니까? 담배나 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잠을 자거나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면 여러 병이 찾아오지만 기도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직접 가르치심)

25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예수님은 지금까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와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로 오셨다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증거합니다.

(직접 기도함)

26-27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면 그날에는 제자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구하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구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가톨릭에서 베드로여 안드레여 마리아여 망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는 기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제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직접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다 사제가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모든 장벽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직접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기도의 응답을 받고 기쁨이 충만해질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강해 2부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말씀 요한복음 16장 16-요한복음 16장 27
요절 요한복음 16장 24절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
요한복음 16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요한복음 16장 강해 삼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장 27-요한복음 16장 33
요절 요한복음 16장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있습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이 떠날 것을 알았습니다. 십자가에서 부끄럽고 고통스럽게 죽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슬프고 두려웠습니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죽했으면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후에 있을 부활을 바라보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후에 그리스도가 되실 것을 아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경배할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승리를 믿고 담대하였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슬프고 두려웠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이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승리를 믿을 때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경쟁 중심의 사회에 살면서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승리를 믿고 담대함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예수님)

28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여 하나님께로 갑니다. 그곳에 가셔서 제자들에게 의를 주시고 제자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으로 오셔서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여주십니다. 구름타고 다시 오실 때는 온 세상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들)

29-3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께로 가시는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지 않는 줄을 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제자들의 미래를 아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제자들이 흩어짐)

31,32a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예수님을 혼자 둘 때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체포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면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 갈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베드로의 미래를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제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을 때 제자들은 자책할 수 있습니다. 가룟유다와 같이 자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미리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아시고 미리 말씀하셔서 그때에 그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앞으로 있을 어려움을 알고 있으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만나면 우리는 당황하고 실족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다시 돌이켜야합니다. 제자들의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 앞에서 그들은 다시 회개하고 일어서야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하심)

32b를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심으로 혼자 있을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버림받고 슬퍼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독하거나 슬프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시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때로는 사람들이 우리의 곁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부모가 먼저 돌아가실 때가 있습니다. 양들이 떠날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결혼하여 떠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죽음의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도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바라볼 때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슬프지 않습니다.

(승리를 확신하신 예수님)

33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미리 제자들의 배신을 말씀하시는 것은 제자들에게 근심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평안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도 지금 근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일이면 십자가에 죽으셔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버림 받는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육체적인 고통도 받아야합니다. 예수님도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은 패배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후에 있을 부활 승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만유의 그리스도가 되셔서 만백성의 경배를 받을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 되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승리의 확신을 갖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하였습니다.
제자들도 십자가를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임하고 위축되었습니다. 피곤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과 함께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이차대전 때 우리 한국이 일본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연합군 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합군이 이겼기 때문에 연합군을 믿고 있던 우리도 이겼습니다.
예수님이 이기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이길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패배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를 확신하면 스트레스는 사라집니다. 우리가 승리를 확신한다면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담대해야합니다. 다윗은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말합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편27:14) 우리는 잠시 패배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명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있을 승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담대히 승리를 기다려야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가 올 것입니다. 주님 이 시간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영광의 약속)

우리는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환난을 당합니다. 환난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환난이 끝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부활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 승리하신 예수님을 믿고 기뻐해야합니다. 담대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대로 반드시 승리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요한복음 16장 강해 삼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장 27-요한복음 16장 33
요절 요한복음 16장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장 강해 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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