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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16장 강해 일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1-15)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11-29 00:00:00
조회수 : 3,202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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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장 강해 1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말씀 요한복음 16장 1-요한복음 16장 15
요절 요한복음 16장 13절

런던 타임즈에 참된 친구가 무엇이냐?라는 것을 현상 공모하였습니다. 그 중에 삼등은 친구는 기쁨은 배가시켜주고 슬픔은 반감시켜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등은 친구는 같은 마음을 갖는 사람입니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참된 친구의 일등은 모두가 나를 버려도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십니다. 특별히 성령님은 모두가 우리를 떠나도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언제 오시는지,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성령님이 오셔서 하실 일은 무엇인지 가르쳐주십니다. 이 시간 우리가 성령님에 대해서 잘 알고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일하신 사도행전과 같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제자들의 핍박)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핍박이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출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출교를 당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됩니다. 유대 사회에서 상행위도 할 수 없고, 그들과 교제도 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제자들을 죽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제자들을 죽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십계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열두 사도와 초대성도들을 핍박한 것도 성전과 안식법을 수호한다는 명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변화되기 전에 교회를 핍박한 것도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가톨릭이 개신교를 핍박한 것은 교회와 신부의 권위를 수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불신자가 핍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핍박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실족하지 않게)

예수님은 왜 제자들이 받을 핍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제자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으로 사는데 이런 핍박을 받으면 내가 잘못 믿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 믿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핍박을 받았는데 제자들이 핍박을 받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신자들은 거룩하고 세상은 악하므로 핍박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핍박을 통하여 제자들의 믿음을 연단하십니다. 지금도 북한의 신자들은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먹지 못하고 매를 맞으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런 핍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그들이 제자들을 핍박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죄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죽게 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영광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을 모릅니다. 가장 본질적인 것이 사랑인데 사랑을 모르고 율법적이고 사소한 것에 매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병들고 고통하는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만 매여서 안식일에 병자에게 자유를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자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알고자 힘써야합니다.

(성령께서 기억나게)

4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예수님은 지금까지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히 보호해주셨습니다. 아무리 바리새인이 공격하여도 예수님은 제자들 편에서 변호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전에는 제자들이 받을 핍박에 대해서 말씀할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떠나야합니다. 예수님이 떠나면 더 이상 제자들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며 말씀에 제자들을 맡깁니다. 예수님은 떠나면서 말씀이 제자들을 보호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핍박의 때에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 성령이 오셔서 말씀을 기억나게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시험 공부해도 시험 시간에 생각이 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성령께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현장에서 말씀이 기억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공회에 끌려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의 할 말을 가르쳐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아이작 뉴우튼이 말년에 치매에 걸렸습니다. 그는 나이도 이름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를 기억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그것을 기억나게 하신 것입니다.

(대속의 핍박)

우리는 여기서 왜 예수님이 핍박을 받았고 우리도 핍박을 받아야하는지 본절적인 문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핍박을 받은 것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죄의 대가를 치르시고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런 맥락에서 핍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에수님이 다 이루셨지만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너무 귀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현재적으로도 대가가 고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산모가 해산의 고통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새생명의 잉태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핍박을 받는 우리의 내면도 연단됩니다. 우리가 핍박받을 대 우리의 믿음은 순수해집니다. 정금같이 귀하게 됩니다. 핍박은 태양과 같습니다. 태양을 통하여 식물이 자라듯이 우리는 핍박을 통해서 믿음이 성장합니다.

(핍박을 통한 성령의 임재)

그러나 이런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핍박을 받을 때에 성령님이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우리가 핍박을 통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기도를 통해서도 받을 수 있지만 고난의 현장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핍박을 받고 나서 기도하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원하십니까? 적극적으로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고난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적극적으로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아보십시오. 성령께서 충만히 임재하실 것입니다.

(근심이 가득한 제자들)

5-7절을 보십시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려 하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현실만 관심을 갖고 근심이 가득하였습니다. 영어성경에는 슬픔이 가득하다고 나옵니다.

(실상은 유익이라)

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는 것에 대해서 실상을 말씀하십니다. 에수님이 가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오히려 유익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떠나지 않으면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야 보혜사 성령님이 오십니다. 육신을 가진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것보다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에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 시대에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봤으면, 먼 발치에서라도 바라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계신 것보다 보혜사 성령님이 오신 것이 더 유익이라고 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성령님)

보혜사 성령님이 오신 것이 예수님이 계신 것보다 왜 더 유익일까요? 예수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 소수에게만 계실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의존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눈치를 보며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 안에서 우리는 자유를 누립니다.

(보혜사)

그러면 보혜사는 어떤 분이십니까? 보혜-사 保惠-師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스승이라는 말입니다. 성령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영어성경에는 helper(도우시는 분), counselor(카운슬러) comfortor(위로자)라고 나옵니다. 원어에는 페라클레토스인데 남을 위해서 나타난 자, 중재자, 조정자, 돕는 자, 변호자, 위로자, 중보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중재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 마음 속에 계시고 우리의 위로 임재하시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에 대해서 눈을 뜨면 예수님을 통해서 받는 것보다 휠씬 더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변화)

우리는 복음서의 제자들이 매우 연약한 것을 봅니다. 그들은 핍박을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가르치면 묻기도 무서워합니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 염려가 많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라면 잠을 잡니다. 서로 간에 누가 크냐고 경쟁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제자들을 보면 완전히 변화합니다. 그들은 자립적으로 기도합니다. 자율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섬깁니다. 그들은 무엇에 매임이 없이 자유롭게 복음을 증거합니다. 핍박을 굴하지 않고 메시지를 전합니다. 돌로 침을 당했는데 다시 일어나 그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서로 싸우지 않고 합심하여 하나가 됩니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계실 때보다 복음은 더욱 힘 있게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그들을 이렇게 변화시킨 힘이 무엇입니까? 육신의 예수님이 떠나고 성령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자립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1977년 ubf를 시작하신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이 미국으로 가셨습니다. 유비에프의 창립자들이 가자 본국은 망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본국의 목자님들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자 본국의 역사는 다섯배 이상의 놀라운 성장을 이루고 85개국 개척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도 사람을 의존하는 의존심을 버리고 성령님에 눈을 뜨고 성령님을 의지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큰 유익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책망하심)

8-9절을 보십시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책망한다는 말씀은 헬라어로 엘렌고인데 노출시키다. 증명하다. 시정하다 처벌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법정 용어로 판사가 올바르게 판단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 앞에서는 책망한다라고 쓰이고 긍정적인 말 앞에서는 확신을 시켜준다라고 쓰입니다. 영어성경에는 convict 확신시켜주다. reprove 증명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책망하다는 일반적으로는 깨우치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하시는 세 가지 깨우침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죄를 책망하심)

첫째 죄를 책망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죄에 대해서라 하면 그들이 믿지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불신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죄하면 도덕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살인하고 도적질하고 간음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불신이 죄라는 것을 깨우쳐주십니다.
우리가 왜 지옥에 갑니까?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순절날 베드로는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설교하였습니다. 너희가 바로 그리스도요, 왕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물었습니다.
시사영어 학원을 하는 마이클 조 선교사님이 간증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무리 중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나도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름수양회에서 밤에 기도하며 성령이 임하였을 때 내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임을 깨닫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회개하였습니다.

(의에 대한 확신)

10절을 보십시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둘째 예수님은 의에 대해서 확신시켜주십니다. 여기서는 의에 대해서 확신시켜 주신다는 번역이 맞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아야합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야합니다.
인간은 심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기 의를 쌓습니다. 불교나 이슬람교나 유교의 공통점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선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자기 의로 하나님 나라에 가려는 것은 마치 헤엄쳐서 태평양 바다를 건너가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입니다. 새가 날아서 달나라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로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에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이 땅에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심으로 의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달나라로 가는 인공위성과 같습니다. 우리는 인공위성의 의를 의지하여 달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붙잡고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이것을 증거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죄사함의 확신을 주십니다. 우리가 의롭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자랑하신다는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승리의 확신)

11절을 보십시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셋째 성령님은 심판에 대해서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세상 임금이 심판 받았음을 확신시켜주십니다. 세상 임금은 사단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세상 임금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여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가 승리하였음을 깨우쳐주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죄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판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면 빌라도가 이미 심판받았음을 알려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십자가 안에서 승리한다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이미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음을 확신시켜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감당할 수 없어서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어려서 지금 젖을 먹는 수준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십자가와 고난과 같은 딱딱한 밥을 주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그분이 다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이 감당하게 하십니다. 감당하는 것은 무거운 물건을 든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려서 들지 못하는 물건을 나이가 들면 들게 됩니다.
한 자매는 제가 전한 주일 메시지를 듣고 한참동안 통곡하였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나중은 참되리라고 말씀을 가지고 이것을 가게에 붙인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말씀을 왜곡한 것이라고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자매가 자신의 가게에 그 액자를 붙였으므로 내가 자신의 말을 한다고 생각하여 마구 울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가게에 그 액자가 있는 것? 알지 못하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내가 자신의 죄를 지적했다고 서운해서 울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말씀을 듣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십자가를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여름수양회 말씀강사로 소감강사로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헌금을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진리의 성령님)

1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예수님은 여기서는 성령님을 진리의 성령님이라고 하십니다. 진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진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리는 진실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이신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성령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에 순종하므로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거듭남은 시작)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여 목자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기뻐서 성경공부를 하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거듭한 후에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소감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 분의 점수는 몇 점일까요? 만점이 아닙니다. 일점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이후부터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그렇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목자는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보면 사망의 골짜기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입니다. 성령님은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향하여 갈 수 있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거짓으로 이끌려 갑니다. 사단이 미혹하는 길로 가서 고생합니다. 천로역정에 나오는 것과 같이 우리는 불신의 가시밭길로도 가고 의심의 낭떠러지로도 갑니다. 절망의 늪, 슬픔의 바다, 두려움의 골짜기로 갈 때도 있습니다. 길을 잘못들어 고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가 진리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잘 따라가면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려 놓아야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방향에 민감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으면 때로 목자가 지팡이로 우리를 끌어올리듯이 우리를 끌어올립니다.
성령님은 스스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오직 들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들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들은 말씀을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장래일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과 꿈을 알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2000년 후에 이루어질 열국의 아비임을 말씀하십니다. 휴거와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성령님)

14,15절을 보십시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것을 알리십니다. 13,14절에 두 번이나 반복하여 예수님을 알리신다고 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에 대한 깨달음을 주십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것은 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것,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알리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는 영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임재하심을 알려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갖게 하십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셨습니다. 미국의 우리 선교사들이 믿음을 살 때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요셉 이사야 선교사님이 모두 ALL A를 맞는 은혜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믿음으로 여름수양회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유익이신 성령님)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님이 오신 것이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얻고 자립적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죄를 깨우쳐주시고 죄사함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도우십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6장 강해 1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말씀 요한복음 16장 1-요한복음 16장 15
요절 요한복음 16장 13절
요한복음 16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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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요한복음] 요한복음 14장 강해 일이부 하나님을 보여주소서 오요한 2009-11-29
40 [요한복음] 요한복음 13장 강해 이삼부 새계명(18-38) 오요한 2009-11-29
39 [요한복음] 요한복음 13장 강해 일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1-17) 오요한 2007-07-18
38 [요한복음] 요한복음 12장 강해 사오부 내가 이를 위하여 왔나이다(27-50) 오요한 200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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