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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13장 강해 이삼부 새계명(18-38)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11-29 00:00:00
조회수 : 2,56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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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 강해 2부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요한복음 1318-요한복음 1330

요절 요한복음 1321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배신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을 유다를 회개시키고자 하십니다. 가룟유다를 사랑하심으로 예수님은 열두 제자 모두를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비록 가룟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배신하였지만 예수님은 이를 통하여 열두제자를 사랑하시고 인류를 사랑하시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의 배신)

 

18-1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은 이전에 서로 발을 씻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열두 제자를 모두 가르쳐 하신 말씀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서로 발을 씻기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통하여 목욕한 자들이 서로 발을 씻기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택한 제자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함께 성만찬을 하는 제자들 중에 하나가 목욕하지 않은 것을 알고 계십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회개하고 예수님의 공동체에 들어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택한 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미리 말씀하십니다.

 

(성경 말씀의 성취)

 

21절을 볼 때 예수님은 12제자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하므로 심히 고통스러우셨습니다. 가룟유다의 배신은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실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잘못 선택하신 것입니다. 아니면 사람을 잘못 도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양성에 실패하셨다면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실패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해야 합니다. 제자가 예수님을 배신하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에 대한 불신이 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 가장 마음에 걸림이 되었던 문제도 가룟유다의 배신입니다. 사도들도 가룟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불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룟유다의 배신을 하나님의 말씀 편에서 보았습니다. 시편 419절에 보면 내 떡을 먹는 자가 내 발꿈치를 들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과 함께 떡을 먹는 자가 예수님께 발끔치를 들고 하이킥을 날렸다는 말입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와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함께 식사하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제자가 자신을 배반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시편 말씀은 그리스도는 함께 떡을 먹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 받는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가룟유다의 배신은 메시야에 대한 구약 성경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시편 말씀에 기초하여 볼 때 가룟유다의 배신은 오히려 예수님이 성경대로 배신 받은 그 그리스도임을 증거해 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기초하여 제자에게 배신 받은 예수님을 더욱 그리스도로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 편에서 바라보아야)

 

우리는 여기서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사건을 인간적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편에서 바라보아야함을 배웁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불신에 빠지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더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심목자님의 질병은 불신에 빠지게 하는데 충분하였습니다. 어떻게 주님을 그렇게 섬기던 분이 흉악한 병에 걸렸단 말인가 그러나 저는 기도 중에 야고보서 45절 말씀이 성취된 것을 영접하였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예수님은 심룻목자님을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였습니다. 제가 이 말씀으로 심목자님을 보았을 때 더욱 믿음이 견고하여졌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말씀 편에서 보아야합니다. 우리가 말씀 편에서 현실을 보고 해석할 때 힘이 나고 소망이 생기고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영접하는 길)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가룟유다의 배신을 말씀하신 후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룟유다의 배신으로 제자 공동체가 깨어질 수 있습니다. 가룟유다의 문제로 불신에 빠져 제 이, 제삼의 가룟유다가 나올 수 있습니다. 서로 너는 가룟유다가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서로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영접해야합니다. 사람을 영접하지 않으면 예수님에 대한 불신까지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불신을 극복하고 서로를 가룟유다와 같이 대하지 말고 예수님과 같이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우리 가운데는 배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을 예수님처럼 믿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배신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죄입니다. 상대방이 어떻든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처럼 대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며 서로를 예수님처럼 대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공동체가 천국으로 변할 것입니다.

 

(회개치 않는 가룟유다)

 

예수님은 시편 말씀을 통하여 함께 식사하는 자 중에서 예수님을 배신 할 것이라고 가룟유다의 배신에 대해서 암시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고 하이킥을 날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인격적입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를 손가락으로 가르치면서 이 패역한 놈아!” 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룟유다는 이 말씀을 듣고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마음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전혀 모르는 체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속에 능구렁이가 든 사람처럼 의뭉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룟유다로 인하여 마음이 괴로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회개하도록 좀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회개를 촉구하심)

 

21-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함께 떡을 먹는 가룟유다가 배신하는 것은 시편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받을 심판을 생각할 때 너무 괴로우셨습니다.

예수님을 파는 자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팔아서 큰 심판을 받습니다. 그는 자살하고 지옥 불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회개하고 심판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가만히 있자 좀더 직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제자들은 이제 좀 무슨 말인가 알아들었습니다. 그들은 놀라는 빛이 역력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면 혹시 네가 아냐 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습니다. 혹시 나는 아닌가 자신을 반성하여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면 가룟유다는 말씀에 기초하여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런 생각을 회개해야 합니다.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모른 체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가룟유다는 참으로 구렁이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가룟 유다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런 죄악된 생각을 드러내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자)

 

23-25절을 보십시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요한이 예수님의 가슴에 누웠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요한을 시켜서 누가 예수님을 파는지 물어보게 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어린 아이처럼 에수님의 가슴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팔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불신하는 자가 예수님을 팝니다. 요한은 자신은 예수님을 팔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누가 예수님을 팔 것인지 여쭈어보았습니다.

 

(배신의 결심)

 

26-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예수님은 내가 떡 한 조각을 주는 자가 자신을 팔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떡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유다에게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계속하여 가만히 있자 이제 구체적으로 한 사람 가룟유다를 지목하여 떡을 주시며 회개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떡을 주신 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알고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이제 유다는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받지 말아야합니다.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팝니까?” 하며 펄쩍 뛰어야합니다. 베드로라면 펄쩍 뛰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서 기도해야합니다. 이때가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기 전에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다른 제자들도 향유를 부은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왜 나만 공개적으로 책망하느냐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불신하였습니다.

 

(사랑에 대한 불신)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에 대해서 그가 왜 배신하였을까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배신했다고 합니다. 돈 때문에 배신한 것은 동기는 될 수 있지만 돈을 버리고 자살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꿈이 깨어져 배신했다고 합니다. 꿈이 깨어진 것은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배신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불신때문입니다. 그는 불신이 가득 차서 떡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받은 것은 예수님을 팔겠다는 결단입니다. 그가 떡을 받자 마귀가 유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결심하였으니 가서 속히 예수님을 팔라는 말입니다.

 

(신실한 자의 배신)

 

28,29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예수님은 분명히 떡 한 조각을 주는 자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가룟유다에게 떡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삼척동자라도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판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룟유다에게 명절에 쓸 물건을 사라는 뜻인지 아니면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주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직접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도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재정부 실무자가 예수님을 파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신실한 자도 회개치 않으면 예수님을 배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신을 자신하지 말고 항상 겸손히 깨어 있어야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캄캄한 밤)

 

30절을 보십시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팔고자 밖으로 나갔습니다. 유다는 독기 어린 눈으로 문을 꽝! 닫고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열두 제자 중에 하나가 예수님을 팔고자 나갔습니다. 분위기가 썰렁해졌습니다. 참으로 슬픈 상황입니다. 사단의 역사로 마음이 아픈 순간입니다. 저자 요한은 그때가 밤이라고 기록합니다. 그의 내면이 밤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가 한 일이 사단의 역사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요한복음 13장 강해 2부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요한복음 1318-요한복음 1330

요절 요한복음 1321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13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요한복음 13장 강해 삼부 새계명을 주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331-요한복음 1338

요절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건강해지는 것은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술을 먹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입니다. 숙면을 취하고 편식을 피하고 운동을 적당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십 프로고 나머지는 오십 프로는 사랑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합니다. 사랑은 건강의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사랑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랑은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고 계명입니다. 대부분 계명은 부정적인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하라는 긍정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딱 한 말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그 계명을 지키고 그 나머지는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가르칠 때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 말라는 말 속에 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라는 것을 생각하며 계명을 지켜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광의 배신)

 

31,32절을 보십시오.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예수님은 이 일로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도 예수님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그리스도로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가룟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은 인류의 죄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가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의 배신이라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가룟유다에 의해서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가룟유다를 처단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서 죽으셨습니다. 시이져는 심복 부르투스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이들이 미리 알았다면 그들을 처단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에 의한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고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준비하셨고 가장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멋진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렇게 죽어야 제자들에게 온 인류에게 사랑을 가르칠 수 있음을 아셨습니다.

 

(고난의 준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결혼을 위해서 많이 준비합니다. 결혼을 여자들은 몇 달 전부터 피부 맛사지를 합니다. 30분의 결혼을 위해서 몇 달 전부터 웨딩촬영을 하고 신혼 여행지를 알아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초청장을 보냅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죽음은 준비하지 않습니다. 유서도 쓰지 않고 죽는 사람이 80프로는 된다고 합니다. 죽음을 하나의 사건이나 사고로 생각합니다. 안 죽을 사람이 죽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축제로 맞이 해야 합니다.

로버트 풀검의 제 장례식에 놀려 오실래요.’ 라는 책이 있습니다. 마사카터라는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는 죽기 전에 장례식에 온 사람들을 위해서 편지를 씁니다. “저는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그리고 그는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밝고 화려한 옷을 입고 오라고 합니다. 그는 죽은 후에 보낼 편지와 선물을 준비합니다. 어떤 편지는 일 년 후에 보내라고 합니다. 우리도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고난을 준비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의 축제로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어떤 고난도 영광스럽게 맞이할 수 있어야합니다.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합니다.

 

(십자가의 준비)

 

33절을 보십시오.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예수님은 이미 유대인들에게 내가 가는 곳으로 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동일하게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올 수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십니다.

제자들은 지금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 다 도망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자를 치면 양들이 흩어질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깊이 이해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앞으로 있을 일을 알고 기도로 대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실족하지 않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양과 같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각기 제길로 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연약함을 십자가에서 감당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습니다.

 

(사랑의 본)

 

34절을 보십시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구약에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이 옛계명이라면 예수님이 주신 것은 새계명입니다. 새계명은 옛계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계명은 옛계명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새계명은 옛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옛계명은 요약하면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힘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천대까지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삼사대 저주를 주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매를 맞고 터지면서도 세상을 사랑합니다. 공동체에서는 배신하고 불신하고 반목하고 시기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속이 더러운 자를 목욕시켜주셨습니다. 발이 더러운 자들의 발을 닦아주십니다. 가룟유다까지 사랑하여주셨습니다. 가룟유다를 어찌하든지 회개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와 제자들을 사랑하사 목숨까지 버리십니다. 그들을 위해서 고귀한 피를 흘리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이 이 예수님의 사랑을 알 때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을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하면 우리의 마음에 사랑의 샘이 생깁니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서로 간에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곳에 영생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사랑을 영접하는 삶)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죄인으로 깊이 발견해야합니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내가 얼마나 몹쓸 죄인인가 발견해야합니다.

그리고 이런 나를 감당하시고 이런 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샘이 솟아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위대한 점은 그가 신앙이 성장할수록 자신을 깊이 죄인으로 발견한 것입니다. 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도 그는 평생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을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그런 자신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내가 무엇이기에 나를 이렇게 사랑하십니까? 기도합니다. 이들은 이런 사랑으로 동역자를 사랑하고 양들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

 

어느 권사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재수를 하고 삼수를 합니다. 주위 사람들도 어떻게 위로해줄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머니 권사님은 항상 얼굴이 밝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분은 자녀들이 자신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은 예전에 집을 나가고 공부도 그만 두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그를 사랑하시고 믿어주시고 돌봐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신이 되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자녀들은 집을 나가지는 않으니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권사님은 자신이 받은 사랑에 기초하여 자녀를 사랑하였습니다.

 

(내 대신 사랑할 사람들)

 

미국의 10위 권 대학 중에 드는 스텐퍼드 대학이 있습니다 스텐퍼드라는 상원의원이고 부자였습니다. 그는 존경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살 목적을 잃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에 아들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아버지 이 세상에는 아들이 많습니다. 젊은이가 많습니다. 내 대신 저 사람들을 사랑하여주십니다. 그는 굳게 결심하고 스텐퍼드 대학을 만듭니다. 그는 유서에서도 내 재산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젊은이를 위해서 써달라고 써 있습니다.

 

(반항하는 자들)

 

예수님은 새 계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계명은 절대적입니다.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주신 명령은 이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계명이 되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계명에 불순종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합니다.

어느 목사 아들이 의대를 다녔습니다. 그들이 담배를 피웠습니다. 목사가 말했습니다. 네가 담배 피우는 돈이 성도들의 헌금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말합니다. 내가 산 담배는 아르바이트 한 돈입니다. 아버지, 저는 꼭 담배를 피워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 담배를 피우겠다고 했을까요? 그는 담배를 피우므로 목사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러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된 정체성입니다. 사단이 심는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계명을 순종할 때 자신의 참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계명은 나 자신을 위하여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

 

사람들은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사랑하고자 하나 사랑이 안 생긴다고 합니다. 이런 사랑은 세상적인 에로스입니다. 에로스는 감정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고통할 때 그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희생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의지적인 것이요. 행동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배려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제자의 표)

 

3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하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표시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사단의 제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복음도 전파됩니다.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6,37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을 제자들이 올 수 없다고 하자 베드로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지금은 베드로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 올 것이라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펄쩍 뛰면서 지금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가룟유다와 다른 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자인지를 몰랐습니다. 얼마나 자신이 악한 자인지를 몰랐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세 번 부인하리라)

 

3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가는 곳을 따라 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가시는 곳을 따라올 수 없을 뿐 더러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닭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시간과 횟수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도 우리를 부인하십니다. 세 번 부인하는 것은 완전한 부인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얼마나 연약하고 악한 자인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베드로를 알면서도 사랑하십니다. 이런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베드로를 영접하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가 연약한 자신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 원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사랑을 알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나중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합니다. 그는 통곡하며 회개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이런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조반을 해주시고 사랑하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영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목숨을 버리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는 그 사랑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먼저 사랑을 받는 자)

 

우리도 가룟유다와 같이 예수님을 배신하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사랑하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를 깊이 알고 주님의 사랑을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동역자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복음 역사가 힘 있게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아멘!

요한복음 13장 강해 삼부 새계명을 주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331-요한복음 1338

요절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강해 3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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