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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13장 강해 일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1-17)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07-18 00:00:00
조회수 : 4,75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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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 강해 1부 서로 발을 씻기라 220장
말씀 요한복음 13장 1-요한복음 13장 17
요절 요한복음 13장 14절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가 해야할 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사랑할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그 힘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다 씻어 주시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배워 성숙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13-17장은 다락방강화입니다. 그 강화의 서론이 13장입니다. 공동체를 하나되게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간의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그 중에 관계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성 4장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이 깨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발을 닦아줌으로 서로의 괸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유월절 전에)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유월절은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예 백성 이스라엘을 장자 심판을 통해 이집트 바로의 손에서 구원해 내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양을 잡아 죽이고 이스라엘의 장자를 구원한 날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광복절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기념하여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유월절 전날에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쓴 나물과 함께 고기를 먹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지내는 마지막이 가까워온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유월절 전날 밤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십자가에 넘겨주고 유월절 아침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십니다.

(끝까지 사랑)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고자 하였습니다. 자기 사람은 예수님의 양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섬기고자 하였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섬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내 기분과 감정에 따라서 사랑했다가 미워하고, 미워했다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팔아먹고, 도망갈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을 세 번 부인할 베드로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여기서 “끝까지”란 “목숨을 다하는 순간까지”, 혹은 “모든 것을 다하여”란 뜻입니다.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13-17장까지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사랑은 갈수록 뜨거워져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기쁘게 할 때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다 실패하고, 절망과 방황 가운데 있을 때에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험한 세상에서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까?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4:18a) 인간의 사랑은 감정과 상황에 따라 잘 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히13:8)

(가룟유다까지)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귀는 가룟 유다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계획을 넣었습니다. 유다는 공동체 안에 약한 자입니다. 마귀는 유다의 약점을 찾았습니다. 유다가 주님에게 헌신하였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을 보고 유다가 잘못되었다고 건의했을 때 예수님은 유다의 말을 오히려 책망하였습니다. 유다는 마음에 예수님은 내가 따를 분이 아니라는 생각합니다.
마귀는 공동체를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은 쉬운 성경을 찾아보면 예수님을 배반할 생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마귀가 사람을 넘어뜨릴 때, 먼저 생각을 넣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은 자유다!”하며 쉽게 헛생각을 허용하는데 우리가 쉽게 빠지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불신의 생각, 음란한 생각, 교만한 생각 등은 마귀가 심는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나면 즉시 회개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팔려는 생각을 하는 가룟유다까지 사랑하였습니다. 가룟유다를 사랑해야 모두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심을 아시고)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신 것을 아셨습니다. 모든 것을 맡았다는 말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이 세상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셨습니다. 공생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해야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죽기까지 사랑하는 일입니다.

(발을 닦으신 예수님)

4절과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셨습니다. 교만한 제자들을 비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몸소 본을 보이셨습니다. 유대에서는 손님이 오면 반드시 발을 씻어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날씨가 매우 덥고 샌들만 신고 다니기 때문에 발에 먼지가 땀과 같이 묻어있습니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종들이 손님의 발을 씻어 주었으나 종이 없는 경우에는 주인이 친히 발을 씻어주곤 하였습니다. 종이 없을 때는 가장 서열이 낮은 사람이 낮아져서 발을 닦아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최후 만찬을 드시는 자리에서 제자들은 자발적으로 발을 씻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발을 닦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서로 크고자 하는 경쟁의식이 뜨거워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누가 일인자가 될 것인가 서열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발 냄새가 온 방안에 진동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하던 중에 조용히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떠 오셔서 도마의 의심하는 발, 빌립의 계산하는 발, 가룟유다의 배반하는 발들을 씻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발을 닦기 위해서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여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의 냄새나는 모든 발을 힘들여 일일이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씻으신 후에 두르신 수건으로 발의 물기를 닦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발을 닦으시며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사랑을 실천할 때는 예수님처럼 즉시, 바로 행해야 합니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요구하지 말고 본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높은 기대 수준을 갖고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교회에 옵니다. 그 그대수준으로 보면 죄인을 보면 판단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해하고 사랑해야합니다. 섬겨야합니다. 그때그때마다 사랑을 표현할 때 사랑이 전달되고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서로 사랑하면서도 안 그런척하면 안 됩니다.

(베드로의 거절)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베드로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발을 씻어 주신다고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예수님께서 발닦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기를 원했고 자신은 수제자로 대잡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발닦는 것을 거절하는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상관이 없느니라)

7절과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그는 예수님이 발 씻기시는 영적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제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자기만큼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완강히 거절하는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더러운 발을 예수님께 씻음 받지 않으면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고 하십니다. 천국에서 몫이 없다는 말입니다. 발을 씻지 않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광과 영적 특권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매일 매일 예수님께 더러워진 발을 내어놓고 개운함과 상쾌한 맛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구주와 죄인의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목욕도 시켜주소서)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상관이 없다는 말씀에 베드로는 속으로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 생각하며 “예수님 제 발 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세요.”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목욕까지 부탁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손과 머리는 닦아줄 수 있지만 목욕을 시켜줄 수 없는 분명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목욕하지 않은자)

10,11절 말씀을 보십시오.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목욕한 사람과 발을 씻은 사람을 구분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기초하여 목욕하지 않은 사람과 목욕은 했으나 발을 씻지 않은 사람, 목욕은 하지 않았으나 발을 씻는 사람, 목욕도 하지 않고 발도 씻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목욕하지 않은 사람은 본문의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물질과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목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목욕을 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땀 냄새와 사람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서울에 갔다가 지하철에서 노숙자를 만났는데 역겨운 냄새가 전동차 안에 진동했습니다. 사람들은 역겨운 냄새로 인해 그를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목욕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인간적이고, 인본적인 냄새를 풍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으로 두꺼운 때를 불려서 그리스도 피의 비누로 깨끗하게 씻어야합니다. 목욕하려면 옷을 벗고 속옷까지 벗어야합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속살을 보여야합니다. 우리의 감추어진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결국 목욕을 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 씻음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씻음을 받기 위해서 그리스도와 주의 종 앞에서 자신의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보배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성령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8).

(발을 씻는 자)

그런데 목욕은 하였지만 발을 씻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후덥지근한 날씨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고 발 냄새가 납니다. 날마다 발을 씻지 않으면 답답하고, 개운하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발에 무좀이 걸리고 발이 썩어서 잘라낼 수 있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죄악된 본성과 육신의 연약함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더러워진 발을 씻어야합니다. 새벽기도, 일용할 양식, 주일 소감 쓰기를 통해서 예수님께 나아가서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주님께 나아갈 때 염치가 없고, 뵐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의지하여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나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흰 눈과 같이 깨끗하게 씻어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한 목자의 간증)

안성ubf 한 목자님의 간증입니다. 저는 충남 태안에서 1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으로 인하여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학창시절 학과를 감당하고 정복하기보다 그때그때만 모면하였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열등감과 운명주의에 빠져서 신세타령만 하였습니다. 인생이 꼬였다, 열심히 해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 뿐인 삶을 멋지게 살고 싶었지만 현실의 모습은 초라하고, 볼품이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리자고 해병대에 지원 입대했습니다. 군 생활은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인내와 끈기를 요구하였습니다. 제대하자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도 며칠이 지나자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캐나다 해밀턴으로 선교사로 나가신 누나는 마지막 부탁이라며 여름수양회에 초청하였습니다. 마지막이라고 하자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교회 수양회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수양회 마지막 날까지 고심을 하다가 막차를 타고 수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수양회 소감을 통해서 나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수양회를 통해서 말씀에 은혜는 받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목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복학하여 기숙사에 있을 때 누나는 가까운 센터에 연락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안성 터미널에서 박무디, 박마리아 목자님을 처음 만났고 예배를 함께 드렸습니다. 박무디 목자님은 때마다 학교에 심방 오셔서 기도를 해 주셨고, 믿음으로 살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임아브라함, 임사라 목자님 가정은 주말마다 집을 오픈하여 방 하나를 내어 주셨고, 맛있는 음식으로 섬겨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이 되었지만 목자님의 진심을 알게 되자 사랑과 섬김을 잘 받아서 저도 성장하여 목자님처럼 선한 목자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빌립보서 4:13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을 의지하여 학과를 감당할 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두원공대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 편입을 준비할 때 영어를 정복하는 것이 큰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음에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이런 죄인을 하나님은 2002년 여름수양회 개회 메시지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말씀을 통해서 가슴에 억누르고 있던 모든 죄짐과 편입의 짐을 다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보혈로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자유케 하셨음을 영접할 때 영적인 세계와 거듭남의 비밀을 체험케 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저의 고백처럼 캠퍼스 목자로 세워 주셨고, 양무리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직장을 주시고 믿음과 내면성이 있는 에스더 목자님과 안성센터 출신 첫 가정 교회를 이루도록 은혜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예찬이와 예은이도 주셨습니다. 축복의 때에 제가 더욱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해야 했는데 형식적인 신앙생활과 영적인 기본 생활을 하지 않으며 세상의 염려와 근심 속에서 살았습니다. 새롭게 여름수양회 말씀을 준비하며 죄인의 얼마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씻지 않고 있었는가를 깨닫습니다. 죄인의 내면에 회사의 상사에 대한 미움과 불평, 증오가 가득하였음을 회개합니다. 제가 날마다 기도와 일용할 양식 말씀으로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깨끗하게 씻음 받겠습니다. 그리하여 회사 동료들과 캠퍼스 지성인들의 연약함과 허물을 감당하며 낮아져 섬기는 사랑이 풍성한 목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세족식의 의미)

12,13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예수님은 주와 선생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다 씻으신 후에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손수 보여주신 세족식의 영적인 의미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서로 발을 씻기라)

14절과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겨주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발을 씻겨주는 것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옳다는 말은 빚을 졌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은혜의 빚을 졌으니 빚을 갚으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서로 발을 씻겨야합니다.

(낮아져야)

첫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서로 서로 낮아지길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발을 씻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람 발밑까지 낮아져야 합니다. 높은 자세로는 절대로 상대방의 발을 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와 스승이시지만 낮아져 그들의 발을 씻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낮아져 섬길 때 큰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낮아져 섬기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저 사람보다 더 낮아져야 하지, 내가 더 나이가 많은데, 내가 교회에 먼저 왔는데’라는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나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경하면 상대방도 나를 인정하고 존경합니다. 서로 서로 내가 먼저 낮아져 동역자들을 귀히 여기고, 존경하고 사랑함으로 우리 모임이 사랑과 은혜가 흘러넘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길 기도합니다.

(약점을 감당해주어야)

둘째, 상대방의 연약하고 부족한 점을 감당해 주길 원하셨습니다. 서로 손과 발을 맞대어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스킨십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동역자들을 서로 사랑하기 힘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동역자에게서 일정한 정도의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즉 상대방에게서 깨끗한 발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기 때문에, 사랑스럽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랑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용서하고 감당해 주는 사랑입니다. 사람은 치명적인 허물과 약점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훌륭한 장점과 개성이 있습니다. 열정적인 반면 섬세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머리가 명석한 반면에 믿음이 부족한 약점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지성인들의 목자로서 말씀을 잘 전하는데 순종이 부족한 약점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흉보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약점을 감당하고 씻어주는 것은 어렵습니다. 많은 아픔이 따릅니다. 손가락질하고 비난만 하는 손이 아름답습니까? 더러운 발을 씻기는 손이 아름답습니까? 우리는 발을 씻어줄뿐 아니라 동역자 간에도 서로의 더러운 발을 내 놓아야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내어놓아야합니다. 저희들도 예수님처럼 동역자들의 발을 씻어줌으로써 사랑의 역사, 회복의 역사,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공동체)

우리 UBF도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박무디 목자님은 안성 UBF가 아주 작은 모임이지만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선교사님들을 초청하여 사랑하고 섬겨 주십니다. 임아브라함 목자님도 가정을 오픈하여 모든 선교사님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장규헌 장미영 목자님 가정은 서울에서 주말에만 내려오는 목자님 가정들의 오고 가는 길을 아주 섬세하게 돕고 사랑으로 섬겨 주십니다. 그리고 가정을 오픈하여 양들과 주님의 종들을 섬기시는 모습을 보면 큰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는 매년 여름이면 천안 아산 청주 안성 연합수양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연합 수양회가 가능합니까? 이러한 모임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든 목자님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기 때문에 가능한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특히 오모니카 사모님을 비롯한 천안센터 사모님들은 강사들의 리허설모임 후에는 월남 쌈밥으로 섬겨 주셔서 월남에 가지도 않고 월남 음식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서아브라함 목자님도 과자와 음료수를 한 아름 들고 오셔서 섬겨 주셨습니다. 안성 ubf가 따로 수양회를 할 때면 천안 ubf의 오요한 목자님은 수박, 멜론, 참외, 등등 푸짐한 과일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또한 함께 수양회를 하는 동안 운동도 함께 하면서 승패를 떠나서 뜨거운 사랑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유일한 표시가 됩니다.(35) 우리는 무관심도 극복해야합니다. 비판적인 생각도 극복해야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절제해야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섬길 때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의 정도를 볼 때 그 모임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공동체가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공동체가 있는 것이 감사하고 감격입니다. 공동체가 모이면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섬기는 자의 복)

16절과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예수님은 종이 자기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그를 보낸 자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높아져서 섬김 받을 때 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예수님을 본받아 자기를 낮추어 남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천성적으로 타고나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배우고, 본받고자 하는 제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영적의미를 알고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서로 발을 씻기며 사랑할 때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가 됩니다.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목욕과 발 씻음)

결론적으로, 우리는 반드시 목욕해야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예수님의 발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더러운 발을 씻김 받을 때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견고해지고 또 서로 발을 씻겨줄 수 있는 모임이 됩니다. 예수님은 낮아져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서로 사랑하라 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을 실천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사랑의 공동체를 든든하게 세워 나가길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3장 강해 1부 서로 발을 씻기라 220장
말씀 요한복음 13장 1-요한복음 13장 17
요절 요한복음 13장 14절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47 [요한복음] 요한복음 17장 강해1 일이부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1-13) 오요한 2009-11-29
46 [요한복음] 요한복음 16장 강해 이삼부1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오요한 2009-11-29
45 [요한복음] 요한복음 16장 강해 일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1-15) 오요한 2009-11-29
44 [요한복음] 요한복음 15장 강해 삼부(13-27)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오요한 2009-11-29
43 [요한복음] 요한복음 15장 강해 일이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1-15) 오요한 2009-11-29
42 [요한복음] 요한복음 14장 강해 삼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15-31) 오요한 2009-11-29
41 [요한복음] 요한복음 14장 강해 일이부 하나님을 보여주소서 오요한 2009-11-29
40 [요한복음] 요한복음 13장 강해 이삼부 새계명(18-38) 오요한 2009-11-29
39 [요한복음] 요한복음 13장 강해 일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1-17) 오요한 2007-07-18
38 [요한복음] 요한복음 12장 강해 사오부 내가 이를 위하여 왔나이다(27-50) 오요한 200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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