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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14장 강해 일이부 하나님을 보여주소서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11-29 00:00:00
조회수 : 3,490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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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 강해 1부 하나님 나라 가는 길되신 예수님

말씀 141-요한복음 146

요절 요한복음 14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3-16장은 다락방 강화입니다.

13장은 사랑을 14-16장은 성령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가시지만 성령으로 다시 오십니다. 성령이 오시는 것이 예수님이 육체로 계실 때보다 더 좋고 풍성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풍성함과 축복이 나옵니다.

제자들의 마음 속에 근심이 있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고통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근심은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근심이 없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 나라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태양을 직접 볼 수 없지만 유리에 꺼멍을 칠해서 일식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은 예수님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보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1a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제자들은 근심이 있었습니다.

14-16장까지 다락방 강화에 보면 근심이라는 말이 7번이나 나옵니다. 166절에는 제자들이 근심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근심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주님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분리됨으로 두려워집니다. 제자의 대표격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재정부 실무자인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임목자는 떠나고 대표는 세 번 부인하고 재정부 실무자는 책임목자를 팔아먹습니다. 이런 모임에 있는데 근심이 안 생기겠습니까?

더 큰 근심은 제자들의 미래는 어떻게 보상받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의 처자식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미래에 대해서 근심이 생겼습니다.

근심은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근심에 시달립니다. 우리는 장래 문제로 근심합니다. 학과 공부나 자녀나 양들로 인하여 근심이 됩니다. 취업, 건강, 직장일, 노후문제로 근심이 됩니다. 우리가 근심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으라)

 

1b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으라는 말은 빌리브나 트러스트로 번역됩니다. 빌리브는 그의 사상과 말이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빌리브는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트러스트는 그를 신뢰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둘 다 관계적인 단어입니다. 트러스트하면 투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장래를 맡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세계 구속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시는 문제로 고민하는 제자들에게 하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하는 줄을 아신다고 말씀하였습니다.(마태복음 632)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고 관심 갖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우리를 이해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육신을 입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성령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아시는 것은 하나님이 아시는 것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체험적으로 아십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고통을 체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배고픔을 아시고 질병을 아십니다. 월급 받지 못한 것도 아십니다. 외로움을 아시고 소외감을 아십니다. 아버지 없는 슬픔을 아십니다. 나의 학점이 잘 나오지 못하는 것을 아십니다. 나의 취업 문제로 걱정하는 것을 아십니다. 가정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아십니다. 나의 성격문제도 아십니다. 나의 결혼 문제도 아십니다. 배고픔을 아십니다. 담배 끊는 아픔을 아십니다.

베드로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도마의 의심도 아시고 빌립의 부정적인 사고도 아십니다. 가룟유다의 이기심도 아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아시고 그들을 연약함과 죄악을 십자가에서 감당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시고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모든 것을 책임져주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모든 근심을 아시고 책임져주시니 예수님을 믿고 맡기고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육신을 가진 예수를 믿으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는 말에 주의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육신을 가진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은 것처럼 예수님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제자들이 사실 육신을 가진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버리시고 하늘나라에 가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십니다.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늘나라로 가시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의 바통을 터치하여 일하십니다. 성령님이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해주십니다.

성령님은 육신을 가진 예수님보다 더 크십니다. 예수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하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서로 믿으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악하고 연악하여 서로를 믿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믿어줄 수 있습니다. 크시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좋으신 하나님 안에서 그 사람을 믿어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그 사람을 믿어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허물을 감당하신 예수님 안에서 서로를 믿어줄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다윗 목자를 믿어줄 수 있고 아들 요한주니어 목자를 믿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서 부모 자녀 부부 목자와 양 사이에 믿어 주어야합니다. 믿음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믿어야 근심이 없어집니다. 믿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아멘!

 

(근원적인 근심)

 

2.3절을 보십시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제자들의 근심은 현실적인데서 온 것만은 아닙니다. 더욱 근원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제자들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근원적인 근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죄인은 죽으면 심판을 받습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 영원토록 고통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근심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든 모르든 깊은 곳에 죽은 후에 대한 근심이 있습니다.

농부가 일을 하다가 힘들면 허리를 펴면서 말합니다. 아이구 사는 것이 뭔지? 이 말 속에는 살다가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느냐는 근심이 들어 있습니다.

 

(거할 곳이 많도다)

 

예수님은 이런 근원적인 근심을 해결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거처를 예비하러 갑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여 하나님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을 예비하러 가십니다. 그곳은 거할 곳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거할 곳은 niv성경에는 many rooms로 나오고, 킹제임스 성경에는 many mansions이라고 나옵니다. 요즘은 시큐어티 문제에 관심을 갖습니다. 보장성 보험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한국 ubf대표를 하신 김다윗 목자님은 목자 생활을 하면서 15번을 이사 다녔습니다. 구석진 방으로 갔는데 연탄을 때면 가스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장모님은 그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집에 가셨습니다. 한번은 길 옆에 집을 얻으니 차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하십니다.

선교사님들이 한국 오시면 우리 거처할 곳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주택문제로 불안해 합니다.

김다윗 목자님은 자신의 목자이신 이사무엘선교사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교사님은 아무 말도 없이 미국에 가셨습니다. 그때 다윗목자님은 사람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지금의 연희 ubf교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펼쳐주시는 광대한 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장을 주시고 지상 메시야 왕국의 한 자리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서 보호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만약 집을 사주었다면 제자들은 한 시대 있다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거처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유형의 것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무형의 것을 주십니다. 집이 아닌 믿음을 주십니다. 그들에게 성령으로 함께 하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근원적으로 위로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면 우리 안에 아버지집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하늘나라에 많은 맨션을 만듭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요동치 않는 거처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계시록을 통하여 천국의 모습을 잠깐 보여주셨습니다. 그곳은 금은보석이 돌처럼 널려있습니다. 그곳은 생명수의 강물이 흐르고 생명나무 실과가 시절을 좇아 맺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우리는 새생명을 얻습니다. 그곳은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고 아픈 것도 없습니다. 배고픔도 피곤도 없습니다. 갈등도 싸움도 없습니다. 이기심도 불신도 교만도 거짓도 없습니다. 가룟유다 같은 배신도, 베드로와 같은 부인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해와 같이 빛나서 해나 달이 쓸데없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그곳은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올라가셨다가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영접하여 그들을 예수님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십니다. 그들의 마음에 거처를 삼으시고 성령으로 거하십니다.

제자들은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새 모습으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맨션을 우리에게 분양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무주택자는 설움을 당합니다. 전세 살고 월세 사는 사람들이 슬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이런 무주택자의 슬픔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 나라에 맨션이 있으므로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근심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진정 근심해야 할 사람은 천국에서 집이 없는 무주택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이 근심해야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 집)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입니다. 우리는 추석이나 설을 기다립니다. 추석이 오면 고향에 돌아갑니다. 부모님을 만나러 갑니다. 교통체증을 겪으면서 몇 시간에 걸쳐서 집에 갑니다. 이렇게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모님이 계신 집이 편안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우리 부모님은 언젠가 돌아가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은 영원한 우리의 고향입니다.

우리는 추석이 되면 고향을 찾아가듯이 죽음이 가까워오면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하나님 나라의 집을 찾아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어머니가 한 사람 한 사람 부릅니다. 다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한 아이가 홀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돌아갈 집이 없는 고아입니다. 그는 가장 불쌍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이 고아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임종할 때 천국을 생각하며 평안하게 가는 사람은 아버지 집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죽을 때 두려움 속에 죽는 사람은 집이 없는 영적인 고아들입니다.

 

(목표를 가진 사람)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왔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한 연구기관에 의하면 사람들 가운데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3프로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이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1050년 후의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장기적인 목표가 보다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 집에 목표로 가지고 살아갑니다. 영원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차를 탈 때 종착지는 보지도 않고 일등석만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삼등석을 타더라도 먼저 목표지인 천국행인지를 확인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지옥으로 가는 일등석은 쓸데없습니다.

 

(이 세상에 살고 싶다)

 

4.5절을 보십시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느냐고 합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아버지 집으로 간다고 하였는데 도마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도마는 분명히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도마가 알 수 못한다고 하는 것은 아버지 집에 관심이 없고 싫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싫거나 관심이 없으면 모른다고 합니다.

이번 주 말씀 공부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다는 것입니까? 싫다는 것입니까?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까? 딱히 싫다는 말은 못해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도마는 하나님 나라가 싫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현재 지구 상에서 눈에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원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의 때와 같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원했고 경제적인 풍요를 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의 시대와 같이 세계의 강대국이 되고 예수님은 그곳에 왕이 되고 자신은 그곳에 장관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도마는 거꾸로 매달려서라도 이 땅에 살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마음이요 사람들의 일반적인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얻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일년 더 사는 것을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맨션에 사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에어컨 있는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을 원합니다. 금이 돌처럼 있는 하나님 나라보다 이 세상에서 금반지 하나가 낫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풍요를 누리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월급 십만원 더 받는 것을 원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도마처럼 현실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가지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도마에게 예수님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길이시고 생명의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로 가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집에 대한 설명보다는 그곳에 가는 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왕의 길을 원했습니다. 출세의 길 독립의 길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진리의 참된 길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강을 건너게 하시는 생명의 길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물이 넘치는 시기에 요단강은 건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들고 죽음을 무릅쓰고 요단강 물에 섰을 때 요단강물을 멈춰섰습니다. 이스라엘은 맨땅을 밟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에는 죽음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죄에서 시작된 죽음의 강물은 아무도 건널 수 없습니다. 부처도 마호맷도 공자도 빌게이츠도 오바마도 건널 수 없습니다. 인간에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강이 흐르고 죽음의 강이 흘러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강물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인간에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새롭고 산 길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의 강물을 딛고 서자 죽음의 강물이 멈춰섰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로 가는 다리가 되어주셨고 하나님 나라로 가는 새롭고 산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길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죽음의 강을 건너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이어령씨는 우리나라 지성인의 대표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 나라가 없었습니다. 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딸도 미국에서 검사를 하였지만 진정한 행복이 없습니다. 성공과 재물을 소유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을 거치지 않고도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성철 스님은 팔년 동안 등을 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불교의 극락은 가짜라고 합니다. 그는 서쪽으로 가면 극락이 있다고 하는데 서쪽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겠느냐고 합니다. 그는 결국 극락이 없다고 합니다. 법화경에는 극락이 있다고 하고 화엄경에는 조금 있다고 말하고 다른 경에는 없다고 합니다. 자신이 연구한 결과 극락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스님들이 극락이 없는데 있다고 속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극락이 원하므로 그들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이 있다고 합니다. 법문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술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성장하면 이 세상이 극락이라고 말합니다. 결국은 공즉시색이요 색즉시공이라고 합니다. 결국 예수님만이 참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내셨듯이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 길은 좁은 길이요 빠져나가기 힘든 길입니다. 우리는 힘들어도 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고속도로를 만들려면 부르도자로 밀고 롤러로 다져야합니다. 차나 사람들이 여러 번 반복하여 다녀야 합니다.

우리는 개를 사와서 오줌눟고 똥눟는 것을 길들입니다. 반복하여 훈련해야 길이 듭니다. 길을 들이려면 고난을 연습해야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야합니다. 우리는 겸손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만들고 감사의 길을 만들고 사랑의 길을 만들고 회개의 길을 만들어야합니다. 이 길이 천국 가는 길입니다. 길을 처음에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길을 내놓으면 편합니다. 저는 새벽기도의 길을 이십년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편안합니다.

요한복음 14장 강해 1부 하나님 나라 가는 길되신 예수님

말씀 141-요한복음 146

요절 요한복음 14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요한복음 14장 강해 이부 하나님을 보여주소서

요한복음 147-요한복음 1414

요절 요한복음 147절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과연 하나님은 계실까요? 과연 하나님 나라는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 싶고 하나님 나라를 보고 싶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가 확실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보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보여주소서)

 

7-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을 알았고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알았으면 하나님을 안 것이고 예수님을 보았으면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 나라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빌립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뜬 구름을 잡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여 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체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은 이런 빌립에게 어이 없어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빌립과 오래 있었는데 나를 알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번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계시하셨습니다.

먼저 자연을 통하여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비로운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신성이나 영원성이나 창조성이나 거룩성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가지 않아도 미국 문화원에 가면 우리는 미국 문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샘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델하우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식코너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는 몸으로 돌아다니셨습니다. 그렇게 하루나 이틀도 아니고 사십 일을 보여주셨습니다. 질병이나 피곤함이나 노화나 죄악에 영향을 받지 않는 새로운 몸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부활할 몸이 어떤 몸인가 알게 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님의 두 가지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두 가지 모습)

 

10,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서로 내주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도 하나님 안에 거하고 삼중 내주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더큰 일을 하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하나님 나라)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회개하면 우리는 거듭납니다.

베드로는 그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 오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완전히는 체험하지 못하여도 부분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마음 속에 있다고 하셨습니다.(17:21)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천국의 분점을 우리 마음 속에 내십니다. 내 안에 천국의 샘물이 생깁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영원한 성령의 기쁨이 솟아납니다. 흔들리지 않는 평안함을 광고하는 시몬스 침대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는데 아이들이 뛰어놀아도 아버지는 잠을 깨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평안입니다. 어떤 환경과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로 변합니다.

 

(일을 통하여 알 수 있는 하나님 나라)

 

둘째,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증거합니다.

마태복음 1228절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이 세상은 사단이 왕이 되어 다스립니다. 귀신은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와 우리를 죽이고자 합니다. 귀신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우리를 가난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사람들을 이기적이로 교만하고 불신과 탐욕과 자기영광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성령으로 질병을 치료하십니다. 죽은 자를 살립니다. 가정불화를 해결하고 화목하게 하십니다. 이기적이고 교만하여 도저히 변화될 수 있는 사람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자실을 꿈꾸던 자들이 힘있게 살게 하십니다. 음란한 자를 순결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자는 더 큰 일도 하리니)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일을 통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제자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처럼 일을 하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을 받으면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쫓았습니다. 죽은 자도 살렸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 양성과 120명의 성도를 남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한번에 삼천, 오천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보다 더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더 넓은 지역을 선교하였습니다. 이런 것은 바로 베드로와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이 지금 그곳에 살아계심을 증거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믿는 자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샘플이듯이 제자들도 하나님 나라의 샘플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알 수 있는 하나님 나라)

 

13 1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기도로 표현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면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예수님은 시행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을 주심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드러내주십니다. 우리는 기도 응답을 통하여 구체적인 현실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다)

 

우리가 창세기를 공부할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여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찾아와 네가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고 하였습니다.(21:22)

이삭을 찾아와서는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다고 하였습니다.(26:28)

외삼촌 라반은 야곱에게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주시는 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30:30)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고 여호와께서 요셉을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다고 말합니다.(39:3)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불신자들에게 보여 주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보여주려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그 안에서 서로를 믿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야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고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분명히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4장 강해 이부 하나님을 보여주소서

요한복음 147-요한복음 1414

요절 요한복음 147절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요한복음 14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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